대법원 '심리불속행' 제도 헌재 집중 조명...정당성 흔들리나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제도가 헌법재판소의 첫 번째 재판소원 사건으로 선정됐다. 상고 사건의 70%가 판결 이유 없이 기각되는 이 제도는 사법부 내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만큼 헌법적 정당성을 두고 본격적인 법적 논쟁이 예상된다.

대법원의 오랜 관행인 '심리불속행' 제도가 헌법재판소의 본격적인 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상고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사건들을 판결 이유 없이 기각하는 제도로, 지난 3월 시행된 '재판소원' 제도의 첫 번째 헌법소원 사건으로 선정됐다. 이는 사법부 내부에서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이 제도가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지 여부를 두고 본격적인 법적 논쟁이 시작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재판소원 제도는 법원 확정 판결로 기본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국민이 헌재에 직접 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사법부 감시 기능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심리불속행 제도의 역사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법원이 '상고심 재판의 효율화'라는 명분 아래 도입한 이 제도는 대법원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제도의 운영 현황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상고심 사건의 약 70%가 본안 심리 없이 심리불속행으로 종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된 사건의 판결문에는 "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은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 제4조에 해당해 이유 없다. 법에 입각해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정형화된 문구만 기재될 뿐이다. 이는 패소가 확정된 당사자들이 자신의 상고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제도가 촉발한 구체적인 분쟁 사례가 지금의 헌법소원으로 이어졌다. 제약회사 녹십자는 과거 백신 입찰 담합 사건에 연루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20억원의 과징금 부과 조치를 받고 검찰에도 고발됐다. 검찰 수사 이후 형사재판에서 녹십자는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 상고심은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같은 사건에서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의 결론이 정반대로 나온 셈이다. 이는 사법 절차상 일관성을 결여한 부당한 결과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녹십자는 이에 항의하며 "행정소송에 대한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헌재는 이를 '재판소원 1호' 사건으로 선정해 재판관 전원이 참여하는 평의에 회부했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그동안 사법부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로 지적되어왔다. 판사들 사이에서는 이를 '10초 재판'이라고 부르며 비판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현직 헌법재판관들의 입장은 주목할 만하다. 대법관 출신인 김상환 헌재소장은 법원행정처장으로 재직하던 2023년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심리불속행의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했다. 그는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판결 이유를 기재하지 않아 제대로 심리, 검토하지 않았다는 오해와 비판을 받아왔다"고 인정하면서 "상고 이유가 있는데도 상고심 심리가 이뤄지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할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법부 고위층도 현행 제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며, 개선 필요성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심리불속행 제도의 헌법적 정당성 문제는 대법원의 구조 개편 논쟁과도 맞닿아 있다. 2011년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대법원의 사건 적체 해소와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 경감을 이유로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했던 바 있다. 이는 상고심 체계를 이원화하여 정말 중요한 사건만 대법원이 담당하고 나머지는 새로운 상고법원이 처리하도록 하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구상은 헌법 101조 2항의 '법원은 최고 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는 규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추진되지 못했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상고법원 도입이 좌절된 상황에서 대법원이 실질적으로 사건 처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운영해온 대체 수단이라는 평가도 있다. 헌재의 이번 심사는 이러한 제도적 배경을 고려하면서도 국민의 재판청구권이라는 헌법적 가치와의 충돌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