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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유조선 호르무즈해협 무임 통과, 73년 전 '닛쇼마루호 사건'의 재연

일본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을 통행료 없이 통과했다. 이란이 1953년 '닛쇼마루호 사건' 때 이데미쓰고산과 맺은 우호 관계를 바탕으로 한 예외적 조치로, 73년 전 역사가 현재에 재현된 형태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봉쇄된 호르무즈해협을 일본 유조선이 통행료 없이 통과했다. 28일(현지시간) 일본 이데미쓰고산 자회사가 운영하는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이데미쓰마루호가 원유 200만 배럴을 싣고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온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이후 일본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란 국영 프레스TV가 보도한 이 사건은 73년 전 같은 정유사의 창업자가 벌인 역사적 사건과 놀랍도록 유사한 상황이다.

이례적인 통과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1953년 벌어진 '닛쇼마루호 사건'이라는 역사적 선례가 있다. 당시 영국이 이란의 석유시설 국유화에 격분해 해군력으로 항구를 봉쇄하자, 이데미쓰 사조 창업자는 영국의 감시를 피해 저렴한 가격에 이란 원유를 사들이기로 결심했다. 대형 유조선 닛쇼마루호를 보내 항로를 속이고 무선 통신을 끊은 채 이란 아바단에서 원유를 가득 실어 일본 가와사키항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서방 거대 자본이 독점하던 국제 원유시장에서 중소 민간 기업이 직접 산유국과 거래한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영국이 법정에서 패소하면서 영국의 봉쇄가 무력화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란도 원유를 수출할 길이 열렸다.

당시 닛쇼마루호 사건은 패전 후 실의에 빠진 일본 사회에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대국인 영국을 민간 기업이 이겼다는 소식에 일본인들은 고무됐고, 이데미쓰 사조의 기업가 정신은 '해적이라 불린 사나이'라는 영화로까지 제작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 사건은 이슬람혁명 이후에도 일본과 이란 간의 우호 관계를 이어가는 토대가 되었다. 주일 이란대사관은 29일 SNS에 "닛쇼마루호 사건은 이란과 일본의 우정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 유산은 오늘날까지 큰 의미를 지닌다"는 글을 올리며 역사적 인연을 강조했다.

이데미쓰마루호는 지난달 초 사우디아라비아 주아이마 터미널에서 원유를 선적한 후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해 항구에 갇혀 있었다. 27일 항해를 재개한 이 배의 목적지는 일본 나고야항이며, 일본까지 약 20일이 걸려 다음달 중순께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유와 나프타 등 에너지 공급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초대형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 것은 일본의 에너지 수급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은 일본 정부가 이란 당국과 협상해 통행료 없는 통과를 성사시킨 것으로 보도했다.

다만 이번 VLCC 통과가 이데미쓰고산에 한정된 예외적 조치라는 점에서 향후 전망은 불투명하다. 현재 페르시아만에 남아 있는 다른 일본 선박 40척이 같은 방식으로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란 당국이 이데미쓰고산과의 특별한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제한적인 배려를 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호르무즈해협의 일일 선박 통행량이 미국의 '역봉쇄'로 한 척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이번 통과는 73년 전의 역사적 우정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