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EREV 시장 폭증, 한국도 전쟁 준비 중
중국에서 EREV(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시장이 2년 사이 2배 이상 성장하면서 완성차 업체들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현대차와 KG모빌리티 등 한국 기업도 EREV 진출을 준비 중이며,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시장 성패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인 EREV(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를 둘러싼 경쟁이 중국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둥펑닛산이 신형 SUV 'NX8' EREV 모델을 출시하며 경쟁사인 리오토를 겨냥한 기술력 비판을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됐다. 리오토의 리샹 회장은 이에 맞서 둥펑닛산을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경쟁사가 댓글 부대를 고용해 자신들의 제품을 비방한다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이같은 갈등은 단순한 기업 간 다툼을 넘어 향후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 EREV 시장의 급속한 성장이 이 같은 경쟁을 촉발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64만대에 불과했던 EREV 판매량이 2024년 130만대를 돌파했으며, 지난해는 120만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년 사이 약 2배 가까이 성장한 셈이다. 특히 일부 차종은 최장 주행거리 1300㎞를 내세우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리오토의 경우 지난해 40만6000대를 판매해 전년 대비 18.8% 감소했음에도 3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인했다. 이는 EREV가 단순한 과도기 기술이 아닌 실질적인 차세대 파워트레인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EREV가 재조명받는 이유는 기술적 효율성에 있다. EREV는 배터리와 내연기관이 결합된 형태이지만, 내연기관은 바퀴 구동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오직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 역할만 수행한다. 이는 전통적인 하이브리드 자동차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배터리의 전기가 떨어지면 엔진이 가동되어 발전하지만, 최종적으로 바퀴를 구동하는 것은 순수 전기뿐이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내연기관이 일정한 회전수에서만 작동하게 되어 효율이 극대화된다. 특히 시내 주행이나 정체가 많은 도시 지역에서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대부분의 승용차가 도심에서 운행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실용적인 솔루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EREV 시장 진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KG모빌리티가 EREV 파워트레인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시장도 곧 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질 전망이다. 이는 2021년 현대차가 중국 합작사 베이징현대의 공장 부지를 리오토에 매각한 사건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신생 기업이었던 리오토는 EREV를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우며 빠르게 성장했고, 이제 한국 완성차 업체들도 이 기술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의 성공 사례가 한국 시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국내 도입 시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정부 보조금 정책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EREV가 기존 하이브리드카(HEV)나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보다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하며, 나아가 순수 전기차와 동등 수준의 보조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초기 확산 단계에서 충분한 보조금이 있어야 EREV가 하이브리드카를 빠르게 대체할 수 있다는 논리다. 동시에 해외 경쟁사, 특히 중국의 EREV와 경쟁하려면 내수 시장에서 일정 규모의 판매 물량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에너지 효율 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 EREV에 보조금을 책정하면 기존 하이브리드나 PHEV 지원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판단 기준은 효율성이 될 수밖에 없다. 기름을 한 방울이라도 적게 쓰는 이동 수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원론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EREV가 순수 전기차로 가는 과도기 기술이면서도 현실적인 주행거리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평가받는 만큼, 정부의 정책 결정이 향후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이미 시작된 EREV의 주도권 싸움이 한국에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책 당국의 신중하고 전략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