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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데이터센터 전력난에 조선·철강 기업들 '에너지 사업' 진출

AI 데이터센터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로 조선, 철강, 화학 등 전통 제조업체들이 발전 설비와 유휴 부지를 활용한 에너지 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2년6개월치 발전용 엔진 수주를 확보했으며, 전 산업의 전력 수급 불균형이 이들 기업의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전력난에 조선·철강 기업들 '에너지 사업' 진출
AI를 활용해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폭증하면서 조선, 철강, 화학 등 전통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불황에 시달려온 이른바 '굴뚝 기업'들이 보유한 발전 인프라와 유휴 부지가 AI 시대의 핵심 자산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지난해 485테라와트시로 1년 전 416테라와트시 대비 16.6% 급증했다. 반면 세계 발전량은 3만1260테라와트시에서 3만2132테라와트시로 약 2.8%만 증가하는 데 그쳐, 전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조선업계가 이 같은 전력난을 기회로 삼으며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달 미국 AI 데이터센터에 6271억원 규모의 선박 엔진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 소식이 공시된 지난 22일 주가는 57만6000원에서 64만1000원으로 11.3% 상승했다. 회사 관계자는 "AI 관련 문의가 폭주해 2년6개월치 발전용 엔진 수주 잔량을 확보했다"며 "연간 500만 마력 규모의 국내 생산설비를 완전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HD현대그룹의 시가총액은 27일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으며, 한화엔진과 STX엔진 주가도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기존 발전 설비인 가스터빈의 가격 상승과 납기 지연으로 기업들이 선박 엔진을 대안으로 선택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HD건설기계는 올해 하반기 전북 군산에 새 엔진 공장을 개설하며 내년부터 AI 데이터센터용 초대형 엔진을 생산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은 더 나아가 '부유식 데이터센터'라는 혁신적 개념을 제시했으며, 바다 위에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냉각 효율을 극대화하는 구상을 추진 중이다. 이는 에너지, 인프라,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산업 모델의 등장을 의미한다. 동시에 철강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동국제강은 인천과 충남 당진 등 제철소 유휴 부지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이를 임대하는 사업을 검토 중이며, 제철소 인근의 변전소 등 기존 전력 인프라를 활용할 계획이다. 현대제철도 올해 1월 인천 철근 제강공장을 폐쇄한 후 유휴 부지를 데이터센터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AI 인프라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BYOE(자체 전력망 확보)' 기조가 있다. 산업 발전 속도에 비해 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해지자 기업들이 자체적인 전력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화학·에너지 기업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다. OCI홀딩스는 태양광 소재 밸류체인을 기반으로 미국 텍사스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진출을 선언했고, SGC에너지는 군산 등지의 열병합발전소를 활용한 전력 공급 모델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전력 생산과 공급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이들의 사업 구조는 BYOE 시대에 최적화된 경쟁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단순한 신사업 진출을 넘어 산업 구조 자체를 재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력 인프라 부족으로 올해 예정된 미국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약 40%가 지연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기존 전력 인프라를 갖춘 전통 제조업체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전력망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지역 기반의 전력 인프라 활용이 필수적이다. 과거에 비효율 자산으로 여겨지던 노후 공장 부지와 발전 설비가 AI 시대의 핵심 자산으로 재조명되면서 전통 제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