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제안…미국은 '숨은 조건' 경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를 제안했으나, 미국은 이란이 요구하는 조건들에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란의 진정한 의도에 의구심을 표현하면서도 이란의 경제적 압박을 인정했고, 전직 관료들은 협상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이란이 역내 중재자들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 내 선박 공격을 중단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요구하는 조건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루비오 국무장관 등 주요 인사들은 이란의 진정한 의도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파키스탄, 오만, 러시아 등을 방문 중인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지역 내 중재자들에게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공격 중단을 대가로 전쟁을 전면 종식하자는 제안을 공유했다. 이란은 미국이 이란에 대한 해상봉쇄를 해제하고 핵 협상을 연기하도록 요구했으며, 구체적으로는 우라늄 농축을 5년간 중단하되 그 이후 5년 동안은 실험실 수준의 초저수준 민간용 농축만 허용할 것을 제시했다. 또한 이란의 우라늄 비축분을 희석해 절반은 국제 사찰단의 감시 하에 자국 내에 보관하고 나머지 절반은 동맹국인 러시아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이란의 첫 번째 제안이 '충분하지 않다'며 이를 거절했다. 국제위기그룹의 알리 바에즈 이란담당 국장은 26일 제안에 대해 이는 체면을 살리면서 협상 순서를 조정한 전략적 변화라고 분석했다. 그는 어려운 쟁점들을 뒤로 미루고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최우선에 두며 봉쇄를 해제함으로써 협상 초기 단계에서 전체 과정이 좌초되지 않도록 하려는 구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백악관은 이 제안에 대해 민감한 외교적 논의 과정에 있으며 언론을 통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란이 제시하는 해협 개방의 조건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현했다. 그는 미국이 이란으로 하여금 어떤 선박이 수로를 통과할 수 있는지 결정하게 하거나 선박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란이 말하는 '해협 개방'이 실제로는 이란의 사전 조율과 허가가 필수적이며 통행료 징수까지 포함한다면 이는 진정한 개방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란이 국제 수로를 누가 이용할지, 그리고 이용 대가로 얼마를 지불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체제를 정상화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루비오 장관은 이란이 현재의 난국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는 진지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란이 물가 상승, 지속되는 가뭄, 급여 지급의 어려움 등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이란 지도부의 분열이 합의 도출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분석했다. 국가와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하는 강경파가 있는 반면 신학적 이념에만 매몰되어 움직이는 강경파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직 미국 고위 관료들은 이란의 종전 제안이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수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주 알제리 미국 대사를 지낸 헨리 엔셔는 핵 문제는 향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지만 호르무즈 해협 문제는 더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되며, 핵 협상은 별도의 시간표에 맞춰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아무런 조건 없이 호르무즈 무역로를 재개방할 경우에도 이것이 이란에게 있어 전략적 승리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시했다.
미국 행정부의 다른 인사들은 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마이크 월츠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다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세계의 핵심 해상 통로는 협상의 도구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하며 뜻을 같이 하는 나라들이 해양 자유를 위한 연합을 구축할 것을 촉구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도 제재 대상인 이란 항공사들과 거래하는 행위는 미국의 제재에 노출될 위험을 안고 있다며 각국 정부가 자국 관할권 내 기업들이 이란 항공기에 제트 연료 공급, 기내식 제공, 착륙료 징수, 정비 등 어떠한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