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개그맨→기자→변호사, 10년 우회로 걸은 신완순의 '경험 투자'
법대 졸업 후 개그맨, 기자, 국회 비서관을 거쳐 10년 만에 변호사가 된 신완순 변호사. 각 직업에서 얻은 경험들이 법률 전문가로서의 강점이 되었으며, 특히 엔터테인먼트 업계 의뢰인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변호사가 되기까지 1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그는 무대 위의 개그맨, 취재 현장의 기자, 국회의 비서관을 거쳤고 어머니의 카페 운영도 도왔다. 한눈에 보면 방향 없이 여러 직업을 전전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신완순 변호사는 그 모든 경험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단호히 말한다. 연세대 법대에 입학했을 당시 그는 변호사의 꿈을 품고 있었지만, 사법고시를 앞두고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이혼을 경험해본 적도, 집을 사본 적도 없는 20대가 상속과 명도, 계약 분쟁의 세계를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기자의 길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기자를 준비하던 스터디에서 만난 선배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나랑 같이 개그맨 시험 보러 가자"는 제안에 응한 신완순은 2012년 MBC 19기 공채 개그맨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간절함이 없었다'고 회고하며, 같은 기수의 김경진, 오정태 같은 선배들과 비교하면서 개그맨으로서의 재능의 벽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회당 출연료 8~9만원에서 세금을 제외하면 월급이 29만원 수준이었고, MBC에서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개그 프로그램을 폐지하려 할 당시였다. 신완순은 "노력을 해도 어느 정도 이상은 못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재능이 타고난 사람을 노력만으로 넘어설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처음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희극인실에서의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 새벽 6시부터 밤 1시까지 이어지는 혹독한 일과와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도제식 교육은 이후 어떤 공부도 어떤 업무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기자 스터디로 복귀한 신완순은 1년도 안 돼 TV조선에 기자로 입사했다. 4년 7개월간 약 1000개의 기사를 작성하며 최소 1000명 이상의 취재원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혼, 전세 사기, 명도 소송 등 현실의 법적 분쟁들을 직접 목격했고, 20대에 법 공부를 포기했던 이유가 오히려 뒤늦게 해소되는 경험을 했다. 기자 활동을 하며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났고, 어머니의 북카페 운영을 2년 가까이 도우며 그 마음은 더욱 구체화되었다. 몸을 쓰는 일의 한계를 느낀 신완순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고", 결론은 원래의 전공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로스쿨 시험에 한 번 떨어진 후 국회 비서관으로 일하며 입법 과정을 직접 경험했고, 변호사시험도 한 번 불합격하는 과정을 거쳤다.
법대 입학부터 변호사 합격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신완순은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는 그것을 포기의 이유로 삼지 않았다. "차단기가 안 열리면 후진했다 앞으로 갔다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성격이에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30대에 접어들어 로스쿨에 들어간 후 법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때, 20대에 손을 놨던 법이 이제는 손에 잡혔다. "이러니까 이런 분쟁이 생기는구나, 이런 취재 현장에서 봐온 장면들이 법 조문과 맞닿으면서 공부가 쉽고 재밌게 느껴졌어요"라고 그는 회상했다. 국회에서 경험한 입법 과정도 법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신완순은 "포기를 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쥐기 위한 용기 있는 결단"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20대에 내려놓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 모두 자산이 되어 돌아왔다고 믿는다.
변호사가 된 지 3년이 된 신완순은 현재 엔터테인먼트 업계 종사자들의 법률 문제를 특히 많이 다루고 있다. 개그맨 시절의 동료들과 예능계 인사들이 그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전문성 때문만이 아니다. "연예인이나 개그맨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처벌이나 패소가 아니라 사건이 알려져서 밥줄이 끊기는 것"이라며, 그의 사무실에서는 비밀이 지켜진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그는 전세 사기, 이혼, 성범죄 사건 등 다양한 의뢰를 처리하고 있으며, 여러 직업을 거친 경험이 의뢰인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기자를 하며 많은 취재원을 만났고, 개그맨을 하며 예체능계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고, 비서관 하며 지역 민원을 처리했어요. 누가 어떤 얘기를 들고 찾아오든 어떤 방향으로 소송을 해야 할지 금방 보여요"라는 그의 말은 경험의 축적이 얼마나 큰 자산인지를 보여준다. 신완순은 변호사를 '본캐'로 삼고 나머지를 '부캐'로 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밝혔다. 10년의 우회로를 통해 얻은 깊이 있는 경험과 통찰력으로, 그는 이제 자신의 본래 전공 분야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