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신는 승무원, 항공업계 복장 규정 대전환
일본항공의 하네다 공항 충돌 사고를 계기로 항공업계의 복장 규정이 대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대한항공을 비롯한 국내 항공사들이 57년간 고수해온 구두 의무 착용 원칙을 폐지하고 운동화 착용을 허용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승무원의 건강, 안전, 그리고 근무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정책 전환을 의미한다.

일본항공(JAL)의 하네다 공항 충돌 사고는 항공업계의 오랜 복장 규정을 뒤흔드는 계기가 됐다. 2024년 1월 하네다 공항에 착륙하던 JAL 여객기가 이륙 대기 중인 항공기와 충돌해 벌건 화염이 치솟았지만, 승무원들의 침착한 안내로 탑승자 379명 전원이 90초 안에 탈출했다. 이 사고 이후 JAL은 지난해부터 승무원이 운동화를 신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2020년 여성 승무원의 굽 높은 구두 착용 의무를 완화한 데 이어 한 단계 더 나아간 조치로, 승무원의 안전과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정책 전환을 의미한다.
대한항공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창립 이래 57년간 고수해온 3~5센티미터 굽이 있는 구두 의무 착용 원칙을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이미 2월부터는 안경 착용까지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 등 저비용항공사가 먼저 운동화 착용을 허용했고, 이제 승무원만 1만 명인 대형 항공사까지 동참함으로써 항공업계의 엄격한 복장 규정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복장 규정의 완화를 넘어 산업 전반의 인식 개선을 반영하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승무원들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부담은 상당하다. 장거리 비행을 담당하는 승무원들은 기내에서 하루 1만5000보 이상을 걷고 14시간 이상 서서 일한다. 이러한 강도 높은 노동 환경에서 굽 높은 구두와 몸매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유니폼은 능률을 떨어뜨리고 만성피로를 초래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특히 여성 승무원들은 구두를 신고 종종걸음을 하면서 직업병처럼 근골격계 질환을 앓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몸에 붙는 유니폼으로 인해 허리를 숙이거나 짐을 올릴 때 옷매무새가 흐트러지면서 속살이 노출되는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복장 규정과 관련된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 2023년 5월 대구공항에 착륙하려던 아시아나 여객기에서 한 승객이 비상문을 열어젖혔을 때, 공개된 사진은 당시의 위험한 상황을 여실히 드러냈다. 꽉 끼는 치마 유니폼을 입고 구두를 신은 여성 승무원이 두 팔을 벌린 어정쩡한 자세로 비상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현재의 유니폼과 구두가 좁은 기내에서의 작업뿐 아니라 긴급 상황에서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승무원이 입기에 부적절함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다. 또한 몸에 붙는 유니폼으로 인한 성희롱이나 몰카 촬영 피해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항공업계의 복장 규정은 전통적으로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여겨져왔다. 델타항공의 복장 규정에 따르면 '승무원이 유니폼을 입는 순간부터 고객 서비스가 시작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국내 항공사의 승무원들도 한파에도 빳빳이 다린 유니폼을 입고 머리핀 같은 액세서리까지 규칙에 따라야 했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제 대중교통으로 널리 이용되는 시대에 항공업계의 브랜드 전략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고급 서비스 이미지를 강조하기보다는 안전에 대한 신뢰를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운동화를 신고 안경을 쓴 승무원의 모습이 이제는 전문성과 신뢰성의 상징이 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