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 에너지 위기 대응으로 인프라·원전 투자 확대…한국 기업 수혜 기대
미국이 DPA를 활용해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유럽이 원전 비중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정책이 대전환을 맞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우려로 인한 에너지 자립 강화 움직임은 한국의 원전 기업과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에 새로운 수주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유럽이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인프라 투자와 원전 확대에 나서면서 글로벌 에너지 정책의 판도가 크게 바뀌고 있다. 미·이란 갈등으로 촉발된 호르무즈해협 봉쇄 우려가 각국의 에너지 자립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도 에너지 자립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만큼,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0일 석유, 석탄, 천연가스 생산 확대와 대규모 에너지 인프라 및 전력망 확충을 위한 대통령 각서 5건을 발표했다. 핵심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제정된 국방물자생산법의 303조를 활용해 연방정부 자금을 에너지 분야에 직접 투입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 석유 생산과 정제 역량 확보는 미국 방위태세에 핵심"이라며 "즉각적인 조치가 없으면 방어 역량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에너지 문제를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국방 전략의 일부로 격상시킨 것으로, 정부 차원의 과감한 투자를 정당화하는 명분이 된다.
현재 미국은 세계 1위 산유국이며 2019년 이후 7년 이상 에너지 순수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수출량이 많아도 개별 에너지원과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는 점이 문제다. 미국은 하루 200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지만 생산량은 하루 1300만 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천연가스의 경우도 전체 생산량은 많지만 북동부 지역은 캐나다산 가스를 수입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적 불균형과 에너지원별 공급 편차를 해소하기 위해 미국은 인프라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지난해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하고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를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의회에서 5~10기의 원전이 에너지부 대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유럽도 에너지 위기 대응으로 정책 방향을 크게 틀었다. 친환경을 표방해온 유럽연합이 원전 확대로 선회한 것은 국제 정세 변화의 심각성을 반영한다. 유로스타트 자료에 따르면 유럽연합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2024년 기준 57%에 달한다. 석유 67%, 천연가스 24% 등 화석연료 수입 비중이 높은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차단되고, 이제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석유 공급까지 위협받으면서 유럽은 에너지 확보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유럽이 원전 비중을 축소한 것이 "전략적 실수였다"고 명시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과거 정책의 근본적인 재평가를 의미하며, 향후 에너지 정책의 급속한 전환을 시사한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원자력 발전 용량을 지난해 98GW에서 2050년까지 109~150GW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이를 위해 약 2410억 유로(약 416조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력의 약 65%를 이미 원자력으로 생산하고 있는 프랑스는 더욱 적극적이다. 프랑스 정부는 올초 원전 6기 신설을 확정했고, 추가로 최대 8기 건설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원전 투자 확대는 한국 기업에 상당한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원전 기업들은 시공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과 풍부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어, 세계 각국의 원전 투자 증가에 따른 수주 기회 확대가 예상된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한국 원전 기업의 경쟁력은 비용 측면에서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미국과 유럽이 태양광, 풍력, 배터리 등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중국산 의존도를 낮추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활동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인프라 투자 확대와 유럽의 원전 투자 증가라는 두 가지 트렌드는 한국의 에너지 관련 기업들에게 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