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물류 외주화로 노동자 사망···노란봉투법 적용 두고 정부와 노동계 충돌
경남 진주의 CU 물류센터에서 화물연대 조합원이 사망한 사건으로 노란봉투법 적용 여부를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입장 차이가 드러났다. 화물기사의 불안정한 법적 지위로 인한 교섭 공백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경남 진주의 CU 물류센터 앞에서 화물연대 조합원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다친 사건은 편의점 업계의 물류 외주화 구조에서 빚어진 갈등이 극단적 참사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정 노동조합법인 노란봉투법의 적용 범위와 해석을 둘러싼 정부와 노동계의 입장 차이가 전면으로 드러났다. 특히 화물기사의 법적 지위 문제가 원·하청 간 교섭 구조의 공백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을 둘러싼 근본적인 논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CU 편의점의 물류 체계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BGF리테일의 자회사인 BGF로지스가 CU 물류·배송을 담당하고, 이를 다시 지역별 협력 운송사에 위탁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화물기사들은 자신의 차량을 보유한 채 협력 운송사와 계약을 맺고 일하게 된다. 화물연대는 지난 1월부터 원청인 BGF리테일을 상대로 7차례 교섭을 요구해왔으나 원청은 이를 거부했다. 원청이 내세운 이유는 화물기사가 개인사업자 형태이고 직접적인 지휘·감독 관계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원청의 교섭 책임이 강화됐다고 본 화물연대의 요구는 계속 무시되었고, 결국 이달 초 무기한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참사 직후 정부는 이번 사안이 노란봉투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고용노동부는 설명자료를 통해 "이번 사안은 노란봉투법에 따른 원·하청 교섭 문제를 넘어선 상황"이라며 "소상공인·개인사업자 등 취약한 지위에 있는 이들이 단결해 대화를 요구할 수 있는 구조가 미비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화물연대가 노조법상 설립 신고를 마친 노조가 아니고, 노란봉투법에 따른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인정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사고 현장을 방문해 "노사 양측이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하겠다"며 대화를 통한 중재 의지를 표현했다. 하지만 정부가 '교섭'이 아닌 '대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점은 노동계로부터 즉각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노동계는 화물기사들을 교섭권을 가진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는 "숨진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로 규정하고, 노사 교섭이 아닌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것은 사안을 원·하청 교섭 문제에서 분리해 원청 책임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낳는다"고 규탄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화물연대는 공공운수노조 산하 업종본부로 이미 설립 신고가 된 조직"이라며 "별도 설립 신고가 없다는 이유로 노조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정부의 일방적 해석"이라고 밝혔다. 노동계는 개정 노조법이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던 조항을 삭제한 것이 특수고용 노동자의 교섭요청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2021∼2022년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를 요구하는 파업 당시 국제노동기구(ILO)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 보장을 권고했고, 법원에서도 화물연대를 노조로 인정한 바 있다는 점도 들었다.
화물기사의 불안정한 법적 지위가 이러한 해석 차이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화물기사들은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지만, 현실에서는 원청의 배송 일정과 물량 배정, 운임 체계에 따라 종속적으로 일한다. 즉, 법적으로는 자영업자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에 가까운 '이중적 지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보호는 받지 못하면서 원청과의 직접 교섭 역시 가로막혀 왔다. 최근 법원은 화물연대가 노동조합임을 인정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2018년 화물차주에 대해 "계약 형식과 무관하게 전속성·지휘통제·소득 의존성이 인정되면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고, 지난해 중앙지방법원도 화물노동자의 집단행동을 노조법상 단체행동으로 인정했다. 다만 이는 일률적 인정이 아니라 개별 사안마다 종속성을 따져 판단한 것으로, 동일한 집단을 두고도 법적 지위가 엇갈리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노란봉투법 적용 범위와 해석을 둘러싼 노정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배달기사로 이뤄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가 원청인 배달의민족·쿠팡을 상대로 교섭요구를 준비하고 있으며, 택배 부문에서도 화물연대가 CJ대한통운·한진택배에 교섭을 요구했지만 공고 과정에서 제외되면서 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개정 노조법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경우 사용자로 보고 교섭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노동부가 이번 사안을 '원청 교섭 문제가 아니다'라고 규정한 것은 법 취지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이번 사고는 다단계 하청 구조 속에서 실질적인 교섭 구조가 부재한 노동 현실이 낳은 결과"라며 "노란봉투법 취지에도 원청이 사용자성을 부정하며 교섭을 회피해온 점이 문제"라고 밝혔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실질적인 교섭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