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미·이란 휴전 중재 성공…'개인 외교' 통한 전략적 부상
파키스탄이 4월 미·이란 휴전 중재에 성공하며 외교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 미국과 이란 양국과의 독보적 관계와 지정학적 위치가 주요 배경이지만, 트럼프 개인과의 암호화폐 계약, 호텔 재개발 협약, 노벨평화상 추천 등을 통한 '개인 외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8일 이란에 대한 폭격을 2주간 유예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 배경에는 파키스탄의 중재가 있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파키스탄 총리 셰흐바즈 샤리프와 파키스탄군 총사령관 아심 무니르와의 대화를 바탕으로 이란에 대한 폭격과 공격을 2주간 유예하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도 "샤리프 총리와 무니르 총장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에 감사한다"고 화답했다. 국제사회가 일제히 환영한 이 휴전 협상에서 파키스탄이 주역으로 등장한 것이다. 미·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도 파키스탄이 양국 모두에게 신뢰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파키스탄은 미국과 이란을 중재할 수 있는 독보적 지정학적 위치를 갖추고 있었다. 그간 미·이란 핵협상을 주선해온 카타르와 오만 등 중동 국가들은 이번 전쟁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직접 받은 당사국이었다.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도 자국 내 미군 기지를 둔 나라로서 이란의 보복 대상이 되었다. 반면 파키스탄은 미국의 '주요 비나토 동맹국'이면서도 자국 내 미군 기지를 두지 않아 중립적 입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파키스탄은 1947년 독립 직후 이란으로부터 가장 먼저 국가 승인을 받은 나라이며, 약 900킬로미터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파키스탄 전체 인구의 최대 20퍼센트인 약 2500만 명이 시아파 무슬림이라는 점도 이란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미국이 파키스탄을 이란의 '보호 강국'으로 지정한 이래, 워싱턴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에는 지금도 이란 이익대표부가 운영되고 있다. 이는 공식 채널이 끊긴 미·이란 관계에서 사실상 제도화된 연결선으로 기능해왔다.
파키스탄이 중재에 적극 나선 데는 경제적·안보적 실리도 작용했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파키스탄까지 불안정성이 번져 국경 안보가 흔들릴 수 있고, 연료 공급 차질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석유와 가스의 대부분을 중동 국가들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동에서 일하는 파키스탄인 500만 명이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은 파키스탄 전체 수출 수익에 맞먹는 규모다. 워싱턴 주재 퀸시연구소의 애덤 와인스타인 중동 프로그램 부소장은 로이터에 "파키스탄은 미국·이란 양국 모두와 실질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긴장 관계를 관리해온 역사가 있다"며 "신뢰 가능한 중재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걸프 국가들에게 없는 독보적 위치"라고 평가했다.
이번 중재의 성공은 파키스탄의 외교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남아시아 전문가 마이클 쿠겔만은 이를 "파키스탄이 수년 만에 거둔 가장 큰 외교적 성과"라고 평가했으며, 미국 중동정책위원회의 선임연구원 카므란 보카리도 "파키스탄의 전략적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중재의 배경에는 단순한 지정학적 조건 이상의 것이 있다. 파키스탄은 트럼프 개인과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강화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무니르 총장은 올해 1월 이슬라마바드에서 트럼프의 측근이자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윗코프의 아들인 재커리 윗코프와 회의를 주재했다. 이 회의에서 파키스탄 재무부는 트럼프 일가의 암호화폐 기업인 월드리버티파이낸셜의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USD1'을 국가 결제 시스템에 도입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외국 정부가 이 기업과 맺은 첫 번째 스테이블코인 계약이었다.
파키스탄의 대미 접근은 경제 협력을 넘어섰다. 윗코프 특사는 2월 19일 워싱턴에서 열린 트럼프의 '국제평화위원회' 창립 회의에서 뉴욕 루스벨트 호텔을 파키스탄항공과 미국이 공동 재개발하는 협약을 발표했으며, 파키스탄은 이 회의에 가장 먼저 가입한 국가 중 하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무니르를 "강인한 사나이, 훌륭한 전사"라고 추켜세웠다. 지난해 인도·파키스탄 무력충돌 이후 미국이 중재에 나선 데 대해 감사를 표하며 트럼프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도 파키스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무니르를 "환상적이고, 이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인물"이라며 "이란 협상에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질적 신뢰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결국 이번 미·이란 휴전 중재는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우위와 트럼프식 '개인 외교'가 만난 결과물이다. 스테이블코인 계약, 루스벨트 호텔 재개발 협약, 노벨평화상 추천 등은 파키스탄이 이 중재자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방식으로 워싱턴, 특히 트럼프 개인과의 관계를 다져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제도적 채널보다 개인적 인맥과 직접 소통을 중시하고, 공개적 찬사와 호의적 제스처에 우호적으로 반응하는 트럼프의 외교 스타일이 이번 협상에 짙게 반영된 것이다. 파키스탄은 순수한 평화 중재자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트럼프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상징자본에 전략적으로 호응함으로써 미·이란 휴전 협상의 주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