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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성폭력 고발 후 7년간 2차 가해 겪으며 싸웠던 '98년생 김현진' 별세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후 7년간 2차 가해와 법적 투쟁을 벌인 김현진씨가 2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는 법정 증언을 통해 가해자의 유죄를 이끌어내며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고 법정에서 가해자를 단죄하도록 이끈 김현진씨가 향년 2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변호를 맡았던 이은의 변호사는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짧았지만 빛나고 뜨거웠던 98년생 김현진님의 작별을 전한다"며 김씨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2016년 박진성 시인에게 당한 성희롱을 익명으로 고발한 이후, 김씨는 7년에 걸친 길고 험난한 법적 투쟁을 벌여야 했다.

김현진씨는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던 당시 박진성 시인에게 당한 성희롱 피해를 트위터에 익명으로 올렸다. 하지만 가해자는 김씨가 금전을 목적으로 한 허위 미투라고 반박했고, 주민등록증 사진과 개인정보를 반복해서 공개하며 2차 가해를 저질렀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일부 언론들도 가해자 편에 서며 김씨를 무고범으로 몰아붙였다. '98년생 김현진'이라는 호칭은 이러한 과정에서 가해자와 동조자들이 붙인 낙인이었다. 당시 피해자는 고등학교 학생이었고, 가해자는 문단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권력 관계의 비대칭성은 더욱 심각했다.

김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가해자를 고소했고, 법원은 2015년 당시 17세였던 김씨에게 성희롱 메시지를 수차례 전송한 사실을 인정했다. 4년에 걸친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초기에 법원에 직접 출석하지 않았지만, 가해자가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가해자는 이 판결을 근거로 김씨의 고발이 무고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피해자의 증언 없이 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김씨는 직접 법정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2021년 4월 9일, 김씨는 재판정에서 처음으로 피해사실을 증언했다. 이후 매번 재판에 출석할 때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2015년 박진성에게 성희롱을 당했습니다"라는 말로 증언을 시작했다.

2023년 대법원은 박진성에게 징역 1년 8개월의 실형을 확정했다. 성폭력 고발 후 무고범으로 낙인찍혀 7년간 법정 투쟁을 벌인 피해자의 승리였다. 김씨는 같은 해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폼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으로 뽑혔다. 당시 인터뷰에서 김씨는 "피해자가 문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두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긴장했지만 최대한 제가 당한 피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범죄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가해자들이 더 활개치고 피해자들은 낙심한다. 제 재판처럼 결국은 범죄자가 처벌받는 판례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세상이 조금씩 변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이 끝난 2024년, 김씨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시를 다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8월 3일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에서 김씨는 "인생에서 재판이라는 것이 없어진 첫 해. 성폭력 고발 이후로 시를 읽을 수 없었던 내가, 재판 중에 연대자분들께 선물 받았던 시집들을 이제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회복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김씨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연대의 목소리들이 가득했다. 이제 그의 계정에는 추모 메시지들이 쏟아지고 있다. 변호사 이은의는 페이스북을 통해 "김현진님은 용기있고 총명한 청춘이었고, 그가 낸 용기에 아주 많은 여성들이 함께 손잡고 직진해 사필귀정을 이루었다"고 추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