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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이스라엘 관계의 역사, 중동 외교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

한국과 이스라엘의 78년 외교 관계는 우리의 일상 경제에 직결된 에너지 수급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석유 확보를 위해 중동 외교를 우선시해야 했던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면, 왜 국가도 때로 감정적 우호관계보다 경제적 필요성을 택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는 단순한 국제 정치 문제가 아닙니다. 이 관계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주유소에서 지불하는 휘발유 가격, 난방비, 전기료 같은 일상의 경제 부담이 직접 영향을 받습니다. 1970년대 오일 쇼크 당시 한국이 중동 산유국들과의 관계를 우선시한 이유도 결국 '석유 확보'였습니다. 당시 한국 경제는 원유에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여전히 중동에서 공급받는 석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두세요.

역사적으로 한국과 이스라엘은 1948년 거의 같은 시기에 독립국가가 되었고, 1950년대에는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을 함께 느끼며 우호적 관계를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은 1964년 서울에 대사관을 개설하며 적극적으로 관계를 강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상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석유 수급을 위해 '아랍 지지 성명'을 발표하고,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 전쟁에서 점령한 영토의 반환을 촉구했습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을 겨냥한 외교 정책의 변화였고, 결국 1978년 이스라엘은 서울의 대사관을 폐쇄하고 일본 대사관에서 한국을 겸임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경제적 필요성이 외교 정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한국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려면 에너지 수급의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1970년대 한국은 에너지 생산의 거의 전부를 중동 산유국에 의존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과 절친이 되면 아랍 산유국들의 불만을 사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외무부 통상국장이었던 최호중 전 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스라엘 대사에게 아랍 지지 성명을 설명할 때 대사가 '그게 정말이냐'고 물은 뒤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느꼈을 배신감과 한국의 어려운 처지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결국 국가도 경제적 필요성 앞에서는 감정적 우호관계를 우선시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드러냅니다.

다행히 1992년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재개설되고 1993년 주이스라엘 한국 대사관이 개관하면서 양국 관계는 정상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도 한국은 여전히 '양다리를 걸쳐야 하는' 외교적 딜레마를 안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가 고조되면서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상황이 이를 증명합니다. 한국이 석유 자급률을 높이거나 에너지 다원화를 추진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중동 외교의 줄타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생활비 부담은 결국 한국 정부가 중동의 어느 쪽과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을 기억해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