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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제재 속 암호화폐로 우회…이란의 11조 원 규모 '암호자산' 전략

이란이 국제 제재와 통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암호화폐를 본격적으로 활용하면서 지난해 78억 달러(약 11조 6000억 원) 규모의 암호화폐 시장을 형성했다. 이란 중앙은행은 5억 7000만 달러 규모의 스테이블코인을 확보해 환율 방어에 나섰으며, 정부 기구와 일반 시민 모두 암호화폐를 제재 우회와 자산 보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제 제재 속 암호화폐로 우회…이란의 11조 원 규모 '암호자산'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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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국제 제재와 통화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본격적으로 활용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의 암호화폐 시장 규모는 78억 달러(약 11조 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단순한 투자 열풍을 넘어 이란 정권이 국가 차원에서 암호화폐를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수년간 이어진 국제 제재로 인해 달러 확보가 어려워지고 자국 통화인 리알화의 가치가 급락하자, 이란 정부는 암호화폐를 통화 방어 및 국제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란 중앙은행의 암호화폐 보유 현황은 정부 차원의 전략적 움직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엘립틱의 조사에 따르면 이란 중앙은행은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인 테더를 최소 5억 7000만 달러어치 이상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4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테더를 매입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환율 방어와 국제 무역 결제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엘립틱은 이란 중앙은행이 테더를 매입한 후 이를 활용해 리알화를 매수함으로써 급락하는 자국 통화의 가치를 방어하려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리알화의 환율 추이를 보면 이러한 위기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현재 달러당 약 131만 리알의 환율을 기록 중인 리알화는 10년 전인 2015년만 해도 달러당 3만 2000리알 수준이었다. 불과 10년 만에 환율이 40배 이상 악화된 것이다.

이란 정권은 확보한 암호화폐를 단순한 자산 보관을 넘어 실질적인 국가 자금 조달과 전략적 목적 달성에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란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활발한 사용자 중 하나는 이란혁명수비대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암호화폐를 무기 구매와 원자재 확보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에 암호화폐로 통행료를 받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호르무즈해협은 전 세계 원유 거래량의 약 20퍼센트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이를 통한 암호화폐 수취는 국제 제재를 우회하면서도 실질적인 자금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란의 정교한 전략을 보여준다.

일반 시민 차원에서도 이란 국민들은 급락하는 리알화보다 암호화폐를 더 선호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란 최대 암호화폐거래소인 노비텍스는 1100만 명을 넘는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플랫폼은 이란 국민이 리알화를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인 테더로 교환한 뒤 이를 해외에서 다른 통화로 전환하는 주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이란 공격 개시 직후 노비텍스에서 자금 유출이 700퍼센트 급증한 사실은 이란 시민들이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자산 보호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쟁 직후 이틀간 비트코인 유출액만 약 1030만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이란 국민들이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잃고 암호화폐로의 자산 이동을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란의 암호화폐 활용 사례는 국제 제재 체제 하에서 국가와 개인 모두가 기존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 차원에서는 중앙은행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면서 통화 방어와 국제 결제를 추진하고, 혁명수비대 같은 국가 기구는 암호화폐로 국제 제재를 우회한 자금 조달을 시도하며, 일반 시민은 자산 보호 수단으로 활용하는 다층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암호화폐가 단순한 투자 자산을 넘어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국가와 개인의 자금 흐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향후 국제 금융 질서와 암호화폐 규제 논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