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긴장 고조 속 라이베리아 선적 선박 급증, 해운 구조의 허점 드러나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중 라이베리아 선적이 급증하고 있다. 라이베리아가 개방형 선박기국으로 세제 혜택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라이베리아·파나마·마셜제도 3국이 세계 선복량의 45.1%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중동 해역의 해운 구도가 급변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중 라이베리아 선적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국제 해운 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가는 초대형 원유수송선 3척 중 1척이 라이베리아 선적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이는 우연이 아닌 국제 해운 체계의 결과물이다. 최근 라이베리아 선적의 벌크선 시노오션이 아랍에미리트 미나사크르항에서 화물을 실은 후 호르무즈해협의 이란 통제 구역으로 진입한 사례도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다.
라이베리아가 국제 해운 시장에서 이러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는 '개방형 선박기국' 제도 때문이다. 개방형 선박기국은 선박의 실제 소유주 국적과 관계없이 외국 선박이 해당 국가의 선적을 자유롭게 등록할 수 있는 제도로, 라이베리아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노오션의 경우 소유주와 선원이 모두 중국인이지만 라이베리아 선적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선박 운영자들에게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제공한다. 라이베리아로 선적을 등록하면 국제항로 선박 수익에 대해 라이베리아의 법인세를 전혀 내지 않고, 등록세와 톤세만 납부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선박 운영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방형 선박기국 제도의 영향력은 통계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25년 1월 기준 라이베리아와 파나마, 마셜제도 3개 선적 국가가 세계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 총톤수)의 45.1%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즉, 세계 해운 물동량의 절반 가까이가 이 세 나라의 편의상 선적으로 등록된 선박을 통해 운송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국제 해운 시장이 실제 선박 소유국의 감시와 규제를 받지 않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규제 공백은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한편 홍해 입구의 소말릴란드가 새로운 지정학적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1991년 소말리아로부터 일방적으로 분리를 선언한 소말릴란드는 자체적으로 군대, 화폐, 정부를 운영하며 실질적인 독립국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의 반대로 국제사회에서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이스라엘만이 소말릴란드를 정식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고립 속에서도 소말릴란드의 전략적 가치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홍해 항로의 안전이 국제 해운의 핵심 이슈가 되면서 홍해 입구에 위치한 소말릴란드의 중요성이 급부상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소말릴란드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후티 반군의 위협으로부터 홍해 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소말릴란드에 군사 기지 설치를 추진 중이다. 이는 소말릴란드가 국제사회의 정식 회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인해 주요 국가들의 전략적 이익이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미국과 이란의 갈등, 후티 반군의 해상 활동, 그리고 라이베리아 같은 편의상 선적 제도가 얽혀 중동 해역의 해운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국제 해운의 투명성과 규제 체계 강화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