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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78주년 추념식, 재일동포 유족 소해금 연주자의 '한' 위로

제주 4·3 사건 78주년 추념식에서 재일동포 3세 소해금 연주자 량성희씨가 공연했다. 증조부는 4·3으로, 조부는 강제징용 후유증으로 사망한 유족인 그는 처음 고향을 방문해 애절한 소해금 선율로 희생자들을 위로했으며, 해외 동포들을 위한 4·3 기록 공개와 문화 행사 확대를 제안했다.

제주 4·3 사건 78주년 추념식에서 눈길을 끈 인물이 있었다. 소해금 연주자 량성희씨(38)는 바리톤 고성현과 함께 가곡 '얼굴'을 연주하며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들을 달랬다. 량씨는 일본 오카야마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이자, 동시에 4·3의 유족이다. 증조부 양달하씨는 1949년 1월 13일 제주 이호리에서 토벌대에 의해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학살당했다. 조부 양문평씨는 1941년 홋카이도 탄광으로 강제징용된 후 해방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오사카에서 폐렴으로 44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량씨 가족은 4·3 당시 증조부뿐만 아니라 고모할머니 등 가족 5명이 희생되는 참변을 겪었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까지 벌어진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다. 특히 1948년 11월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간 진행된 초토화 작전에서 4·3 전체 희생자의 80%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토벌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양달하씨는 이러한 초토화 작전의 절정기에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학살당한 수많은 주민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아들 양문평씨는 일제 강제징용의 피해자였으며, 해방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에서 강제징용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는 한반도 근현대사의 비극이 한 가족에 집약된 사례다.

량성희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4세 때 피아노에 입문했고, 13세부터 소해금 연주를 시작했다. 소해금은 북한에서 전통 해금을 4현으로 개량한 악기로, 바이올린과 흡사하지만 한민족 특유의 애절한 정서가 담긴 음색이 특징이다. 량씨는 금강산가극단 민족관현악단의 악장을 11년간 지냈으며, 일본과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연주활동을 펼쳐왔다. 이번이 처음으로 고향 제주 땅을 밟은 것이었다. 량씨는 추념식 전날 제주시의 한 호텔에서 "바이올린과 흡사하지만 우리 민족 특유의 애절한 정서가 담긴 소해금 선율이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의 마음에 위로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량씨의 이번 제주 방문은 단순한 추념식 참석을 넘어 가족사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량씨의 아버지는 조선적 국적인 탓에 수십 년 동안 할머니의 유골을 찾지 못했다. 딸이 4·3 추념식에 초대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 아버지는 할머니 꿈을 꿨고, 매일 눈물로 지새웠다고 한다. 이번 방문에서 가족은 조모의 산소를 찾을 수 있었다. 량씨는 "아버지 세대는 재일조선인들을 간첩으로 몰았던 국가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있고, 여러 제약 때문에 고향을 찾는 것이 쉽지 않으셨다"고 설명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겪어온 구조적 차별과 폭력의 흔적이 여전히 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량씨의 4·3 추념식 참석 소식은 재일동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제주 방문 소식에 많은 재일동포 유족들로부터 '내 가족이 어떻게 희생됐는지 경위를 알아봐달라'는 간절한 부탁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직접 방문이 아니면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에 직면했다. 량씨는 "고향 방문이 힘든 해외 동포들은 가족의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조차 알기 어려운 처지인 만큼 개인정보 보호 범위 내에서 유족이 희생자의 기록을 비대면으로 알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제주도에서 4·3을 대표하는 곡들의 저작권을 구입해 누구나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다면 4·3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량씨는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밝혔다. "4·3을 알게 된 이후 유족이자 연주자로서 사명감을 갖게 됐다"며 "국내외에서 열리는 제 연주회에서 4·3 관련 곡들을 고정적으로 연주해 4·3을 알리고, 고향 제주를 꾸준히 찾아 연주로 아픔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나아가 매년 오사카에서 여는 위령제 이외에 재일동포 20~30대도 장벽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음악제와 같은 문화 행사를 병행하는 안을 제시했다. 더 나아가 "저의 가족사에는 한반도 근현대사의 비극인 강제징용, 4·3, 재일동포의 서글픈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며 "가족사를 소재로 4·3을 알리는 음악 영화를 만드는 안을 친한 재일 영화감독과 상의 중"이라고 밝혔다. 량씨의 소해금 선율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분단과 이산의 아픔 속에서도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재일동포 사회의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