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불안정 속 한국, 미국산 원유 수입 급증…작년 16.3%까지 확대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 속에서 한국이 미국산 원유 수입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미국산 원유의 수입 비중이 2016년 0.21%에서 지난해 16.3%까지 급증했으며, 정부와 정유업계가 에너지 수급 안정화와 대미 무역수지 개선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이 원유 수입 구조를 적극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와 중동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에너지 수급 차질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와 정유업계가 미국산 원유 도입을 대폭 늘리는 전략을 추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당국 관계자는 "중동산 원유 도입이 차질을 빚는 가운데 국내 4대 정유사가 모두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물량 확보를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으며, 대체 물량 중 가장 큰 비중이 미국산"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원유 수입 구조 변화는 지난 10년간 극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2016년에는 중동산 원유가 전체 수입량의 86%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 의존도를 보였으나, 수입 다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에는 이 비중이 69.6%까지 하락했다. 중동산이 차지하던 몫을 가장 크게 메운 것이 바로 미국산 원유다. 미국산 원유의 수입 비중은 2016년 0.21%에 불과했으나 2018년 5.3%, 2019년 12.4%, 2023년 13.5%, 2024년 15.7%를 거쳐 지난해 16.3%까지 급상승했다. 이는 불과 9년 사이에 미국산 원유 수입 비중이 약 77배 증가한 셈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2015년 미국의 원유 수출 금지 해제가 있었다. 미국이 셰일 오일과 가스 생산·수출을 확대하자 한국은 중동 정세 불안 등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산 도입을 전략적으로 늘렸다. 특히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에는 이러한 도입 확대가 더욱 활발했으며,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현재 대미 관세·통상 협상 과정에서 미국산 에너지 도입 확대 계획을 명시적으로 밝혔으며, 이는 미국과의 무역수지 불균형을 완화하려는 의도도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적자 문제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한국이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를 통해 대미 무역수지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유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대주주인 에쓰오일은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GS칼텍스와 HD현대오일뱅크는 미국산 원유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SK에너지 역시 중동 위기에 따른 대비 차원에서 미국산 조달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차원에서도 재외 공관 상무관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무역관, 해외 지사 등을 통해 원유와 천연가스, 나프타 등의 대체 물량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체 공급선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등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을 받지 않는 중동 국가는 물론 미국, 카자흐스탄, 그리스, 알제리 등 다양한 국가들이 검토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도 한국의 미국산 원유 도입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대통령이 백악관 연설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중동산 원유·가스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을 향해 "미국에서 석유를 구입하라"고 직접 제안하면서, 한국이 이에 대한 실질적인 압박을 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없더라도 정부와 업계는 중동전쟁에 따른 에너지 분야 영향이 6월 이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하며 대비하고 있다"며 "미국산 도입을 포함해 다양한 에너지 대체 물량 확보를 위해 업계와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국의 에너지 수급 안정화와 미국과의 통상 관계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라는 정책으로 수렴되고 있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