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방어에 34조원 투입했지만 17년 만에 최고가 경신
원-달러 환율이 1530원을 돌파하며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지난해 4분기 환율 안정을 위해 34조4000억 원을 투입했지만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한 유가 상승으로 인해 고환율이 심화되고 있으며, 외국인의 순매도로 코스피도 5,0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원-달러 환율이 31일 1530원을 돌파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환율은 장중 1536.5원까지 올라 2009년 3월 10일(장중 1561.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면서 달러 강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대규모 환율 방어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환율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외환 당국은 지난해 4분기(10∼12월) 환율 안정을 위해 224억6700만 달러(약 34조4000억 원)를 외환시장에 투입했다. 이는 2019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로, 2024년 4분기 비상계엄 사태 당시 투입액(37억5500만 달러)의 약 7배에 달하는 규모다. 역대 최대의 외화 보유액을 소진하면서까지 시장에 개입한 결과 환율은 연초에 일시적으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월 말 전쟁 악재가 터지면서 환율이 다시 고공행진을 시작했고, 현재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 한은의 진단이다.
국제 유가의 급등이 환율 상승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5월 인도분은 배럴당 112.78달러에 거래되고 있으며, 2월 말 대비 55% 상승했다. 이는 1990년 9월 1차 걸프전쟁 당시의 월간 상승률(46%)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유가 상승은 달러 수요 증가로 이어지면서 원화 약세를 초래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도 현상까지 겹치면서 환율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윤경수 한은 국제국장은 "최근 환율이 속도 측면에서 빨리 올라가고 있다"며 "시장의 심리나 달러 수요 쏠림이 뚜렷해지는 상황이 되면 원칙적으로 개입하겠다"고 밝혔다.
주식시장도 고환율과 고유가의 영향을 받으며 큰 낙폭을 기록했다. 31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4.26%(224.84포인트) 하락한 5,052.46에 거래를 마감하며 19거래일 만에 5,000선 아래로 내려앉았다.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9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으며, 3월 19일부터 31일까지 총 2조2700억 원어치를 팔았다. 3월 월간 순매도 규모는 33조6500억 원으로 2월(21조600억 원)보다 12조 원 이상 증가했다. 코스닥지수도 4.94%(54.66포인트) 하락한 1,052.39에 마감했으며, 시장 전반에 걸친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환율이 당분간 1500원 밑으로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국채 발행을 통한 2, 3차 추경이 이뤄지면 환율 상승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임정은 KB증권 연구원도 "국제 유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한 고물가 위험이 국내 주식 시장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반등의 계기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자는 환율 상황과 관련해 "큰 우려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시장의 우려는 여전히 높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