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진술영상 증거 사용, 헌재 '간신히' 합헌 판정
헌법재판소가 성폭력 피해 장애인의 진술영상을 반대신문 없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법 조항을 합헌으로 판정했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이라고 판단해 팽팽한 의견 대립이 벌어졌으며, 향후 판단이 바뀔 가능성도 남아있다.

헌법재판소가 성폭력 피해 장애인의 진술영상을 반대신문 없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법 조항을 합헌으로 판정했다. 다만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이라고 판단해 헌법재판소 역사상 가장 팽팽한 의견 대립이 벌어졌으며, 향후 법 개정이나 사회 여론 변화에 따라 판단이 뒤바뀔 가능성도 남겨두었다. 26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발표된 이번 결정은 피해자 보호와 피고인의 방어권이라는 두 가지 헌법적 가치가 얼마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번 위헌법률심판의 대상이 된 것은 구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 30조 6항이다. 해당 조항은 피해자가 19세 미만이거나 신체·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피해자 진술이 담긴 영상물이 실제 조사 과정에서 작성된 것임이 인정되면 반대신문을 거치지 않아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은 2020년 지적장애 3급인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A씨가 자신의 방어권이 침해되었다며 제기한 것이다. A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피해자의 진술영상이 반대신문 없이 증거로 채택된 것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들은 장애인 피해자에게 반대신문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기억이 왜곡되거나 극도의 위축 상태가 초래되어 진술의 정확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보장이 공정한 재판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핵심은 물리적 대면이라는 형식 자체가 아니라 진술의 진실성과 신빙성을 검증할 수 있는 실질적 기회가 보장되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또한 해당 법 조항이 재판부의 재량으로 진술영상 외에 통상적인 증인신문을 실시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된다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피해자 보호라는 명분 아래 절차적 정의를 어느 정도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입장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위헌 의견을 낸 5명의 재판관들은 반대신문을 보장하면서도 피해자가 위축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방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증거보전절차, 영상중계신문, 피고인 퇴정, 신뢰관계인 동석, 질문 사전 통제 등 다양한 대안 수단이 존재한다며, 피해자의 진술이 유죄 판단의 결정적 근거가 되는 경우에는 실질적 반대신문 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중대하게 제한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절차적 정의와 피해자 보호 사이에서 더 많은 법적 기술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현행 법 조항이 너무 성급하게 반대신문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위헌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번 사건에서 위헌 의견이 과반수였지만 정족수에 미달해 결국 합헌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지만, 실제로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거의 반반에 가까워 향후 인사 변동이나 사회적 여론 변화에 따라 판단이 뒤바뀔 가능성이 충분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2021년 12월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진술 영상만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하도록 한 조항을 재판관 6대 3 의견으로 위헌 결정한 바 있다. 이후 국회는 2023년 7월 법률을 개정해 피해자 진술 영상의 증거능력 요건을 전반적으로 강화했으며, 이번 심판은 개정 전 법 조항에서 장애인의 진술영상을 증거로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다.
이번 결정은 성폭력 범죄의 특수성과 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의 기본적 방어권을 어느 선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지적장애가 있는 미성년자 피해자의 경우 반복적인 신문 과정에서 진술이 왜곡되거나 심리적 충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과, 동시에 피고인이 자신을 방어할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는 점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는 앞으로도 계속 논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이 간신히 합헌으로 결정된 만큼, 법원과 국회는 피해자 보호와 절차적 정의 사이에서 더욱 정교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