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의혹 수사 주도한 전 FBI국장 뮬러 별세, 향년 81세
미국 FBI의 전 국장이자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개입 의혹을 수사한 특별검사 로버트 뮬러 3세가 21일 별세했다. 그는 9·11 테러 이후 FBI를 현대적 테러 대응 기관으로 재편한 인물이며, 2016년 대선 러시아 개입 수사를 주도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전 국장이자 트럼프 대선 캠프의 러시아 개입 의혹을 수사한 특별검사 로버트 뮬러 3세가 지난 2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1세였다. 뮬러의 가족은 21일 성명을 통해 "깊은 슬픔으로 밥(뮬러의 애칭)이 금요일 밤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었다"며 "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달라"고 요청했다. 뮬러는 2001년 9월 11일 테러 이후 FBI를 테러 대응 중심의 현대적 법 집행 기관으로 탈바꿈시킨 인물로, 양당의 대통령들을 거치며 12년간 국장직을 역임한 미국 법 집행 역사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뮬러는 1976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임명되어 FBI 국장으로 취임한 지 단 1주일 후 9·11 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FBI의 최우선 과제는 국내 범죄 수사에서 테러 예방으로 급격히 전환되었고, 뮬러는 이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서 국가 안보 체계를 재편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 테러 위협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100건 중 99건의 테러 음모를 저지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는 거의 불가능한 기준이 FBI와 연방정부 전체에 부과되었다. 뮬러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FBI의 조직 문화와 운영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21세기 법 집행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뮬러는 FBI 역사상 J. 에드거 후버 다음으로 두 번째로 오래 국장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원래 10년 임기였으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2013년까지 재임했다.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의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인 뮬러는 경력 중반에 민간 부문에서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공직에 남아 있기로 선택했다. 그의 신사적이고 절제된 품행은 소셜미디어가 지배하는 현대 시대에 일종의 시대착오적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러한 특성은 그를 공직자로서 높은 신뢰와 존경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2017년 뮬러는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차관의 요청으로 다시 공직으로 돌아와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의 러시아 개입 의혹을 수사하는 특별검사로 임명되었다. 뮬러는 약 2년에 걸쳐 미국 법무부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으면서도 논쟁적인 수사를 조용히 진행했다. 그는 수사 기간 단 한 번의 기자회견도 열지 않았으며,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의 맹렬한 공격 속에서도 침묵을 유지하여 그의 업무를 둘러싼 신비감을 조성했다. 뮬러의 엄격한 표정과 과묵한 태도는 그가 맡은 임무의 심각성과 정확히 부합했다. 수사 결과 뮬러는 트럼프 대선 캠프의 선거 캠프 의장과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을 포함해 대통령의 측근 6명에게 형사 고발장을 제출했다.
2019년 4월 공개된 뮬러의 448쪽 수사 보고서는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사이의 상당한 접촉이 있었음을 드러냈으나, 형사 음모의 증거는 찾지 못했다. 보고서는 트럼프가 수사를 장악하거나 중단하려던 시도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들을 제시했으나, 뮬러는 트럼프가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내리지 않았다. 이 결정은 이후 미국 정치에서 오래도록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뮬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로버트 뮬러가 방금 죽었다. 좋다, 나는 그가 죽었다는 게 기쁘다"며 "그는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이와 대조적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뮬러를 "FBI 역사상 최고의 국장 중 한 명"이라 평가하며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추모했다. 오바마는 또한 "법치주의에 대한 그의 끈기 있는 헌신과 미국의 핵심 가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그를 우리 시대 가장 존경받는 공직자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FBI 산하 수사관 협회도 성명을 통해 뮬러의 "공직 봉사 정신과 FBI 임무에 대한 헌신"을 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