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메시지를 평생 전한 미와 아키히로 타계, 91세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하며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로서 평생 평화를 외쳐온 미와 아키히로가 20일 타계했다. 향년 91세. 그는 "사랑이 모든 문제의 열쇠"라는 신념으로 전쟁의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증언했다.
가수이자 배우로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주며 피폭자로서 평생 평화를 외쳐온 미와 아키히로가 20일 타계했다. 향년 91세. 그는 공식 웹사이트에 직필로 남긴 메시지에서 "이 세상을 살아내는 무기는 사랑의 말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전쟁 따위는 일어나지 않습니다"라고 평화에 대한 신념을 드러냈다. 그의 죽음은 일본 평화운동 역사에서 중요한 한 시대의 마감을 의미한다.
미와 아키히로는 1945년 8월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당시 폭심지에서 약 3.6킬로미터 떨어진 자신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피폭됐다. 당시 10세 어린이였던 그는 2024년 매일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 순간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그림이 어떻게 나왔는지 보려고 창문에서 2, 3걸음 뒤로 물러섰어요.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멈추고 고요해지는 그 다음 순간, 세상의 모든 음이 모여진 것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밖으로 나갔을 때 온몸이 화상을 입은 사람들과 마주쳤고, 며칠 뒤 학교 운동장에는 타다 남은 시신들이 줄을 이었다고 회상했다.
피폭 이후의 고통스러운 기억에도 불구하고 미와 아키히로는 평화 메시지 전달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피폭 경험을 떠올리는 것은 싫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피폭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남은 데에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라고 평화를 위한 증언을 계속했다. 그는 단순히 과거의 증인을 넘어 현대 사회의 분쟁과 갈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전쟁은 최고의 죄악"이라는 신념 아래 핵무기 보유의 부당성을 강조하고, 양심에 따라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파했다.
미와 아키히로의 영향력은 피폭자 증언의 영역을 넘어섰다. 그의 뛰어난 미모와 중성적 패션은 일본 사회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도전하는 상징이 되었으며, 가수, 배우, 성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유산은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통해 평화의 필요성을 설파한 평생의 활동이다. 그는 정치적 메시지를 넘어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과 도덕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전쟁의 부당성을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에게 전달했다.
그의 타계는 태평양전쟁의 마지막 피폭자 세대가 역사의 무대에서 점차 물러나고 있음을 상징한다. 나이 들어가며 직접적인 피폭 경험을 증언할 수 있는 인물들이 줄어드는 가운데, 미와 아키히로처럼 예술적 표현력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한 이들의 역할은 더욱 귀중하다. 그가 남긴 "사랑이 있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신념은 현재와 미래의 세대에게 계속해서 평화의 길을 제시하는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