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메모리 부족에 완제품 기업 줄줄이 가격 인상, 반도체사만 호황
AI 메모리 칩 공급 부족으로 애플, 삼성 등 완제품 기업들이 줄줄이 가격을 인상하고 있는 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3사는 70~80%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가 인공지능(AI) 발 메모리 칩 공급 부족으로 인한 '칩플레이션(칩+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하면서 스마트폰, 노트북, 가전 등 완성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생산원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제품 가격을 대폭 인상하고 있다. 이는 강력한 공급망을 갖춘 글로벌 톱 기업들까지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업계 전반의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을 낳고 있다.
애플이 이번 위기의 심각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애플은 최근 맥북 프로(1999달러)와 맥북 에어(1299달러) 등 주요 제품의 가격을 최대 300달러씩 올렸다.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인 신형 아이폰18 시리즈도 가격 인상이 예고된 상태다. 애플은 칩 출시 전략까지 바꿔 차세대 M6 칩의 고사양 버전 출시를 건너뛰고 기본형만 내놓기로 결정했다. 이는 메모리값 상승으로 인한 원가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로 메모리 가격 급등의 영향을 직격으로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 갤럭시S26 시리즈의 가격을 전년 대비 최대 20% 인상했으며, 올초 출시한 노트북 갤럭시북6 시리즈 가격도 출고가 대비 최대 90만원을 올렸다. 보급형 스마트폰 갤럭시A37의 가격도 59만8400원으로 책정해 기존 제품 대비 19.8% 높게 책정했다. 다음달 하반기 언팩 행사에서 공개될 폴더블폰 시리즈의 가격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부품값 폭등으로 인한 타격은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해온 중국 업체들에게 더욱 심각하다. 샤오미와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은 100달러 미만의 저가형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시장을 이끌어왔지만, 메모리 칩 가격 급등으로 이들 제품의 마진 확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다. 이에 따라 이들 업체는 그동안 쌓아온 가격 경쟁력을 포기하고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사업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부품값뿐 아니라 제조와 유통 비용까지 동시에 치솟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보급형 스마트폰 시장 자체가 소멸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 생산사들은 공급난 속에서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 반도체 3사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까지 메모리 칩을 구하기 위해 대기열에 서야 할 정도의 절대적 지위를 확보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지속되면서 메모리 3사의 영업이익률은 제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70~80%대에 달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은 최근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했으며, 올해 3분기 영업이익률은 84.9%에 이르렀다. 이는 메모리 부족 현상이 지속되는 한 반도체 생산사들의 초호황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칩플레이션' 현상이 글로벌 IT 산업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완제품 제조사들의 수익성 악화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IT 제품의 수요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메모리 반도체 생산사의 공급 능력이 업계의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글로벌 IT 생태계의 주도권이 완전히 반도체 업체로 넘어가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