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초상으로 자본가에 맞선 화가, 멕시코를 미술 강국으로 만들다
1930년대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뉴욕 록펠러센터 벽화에 레닌 초상을 그렸다가 철거 위기를 맞았다. 이 사건은 창작의 독립성과 후원의 영향력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가 되었으며, 역설적으로 리베라의 작품 가치를 높여 멕시코를 미술 강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1930년대 멕시코는 유럽이 제1차 세계대전의 충격으로 문화적 침체에 빠져 있을 때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오랜 독재를 종식하고 사회경제 개혁으로 정치적 안정을 찾아가던 멕시코 정부는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국가의 고유한 역사와 진보적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공공건물에 거대한 벽화를 그리는 프로젝트를 적극 지원했다. 이것이 '멕시코 벽화 운동' 또는 '멕시코 르네상스'로 불리는 역사적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이 운동을 통해 멕시코는 단순한 예술 소비국에서 세계 미술 강국으로의 도약을 이루어냈으며, 이 과정에서 디에고 리베라라는 거장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디에고 리베라는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와 함께 멕시코 현대미술의 '위대한 3인'으로 불렸다. 오늘날 프리다 칼로가 멕시코의 국민화가로 더 많이 언급되면서 리베라는 칼로의 남편으로 소개되곤 하지만, 생전에 리베라가 누린 명성은 정말 대단했다. 마티스나 피카소와 동격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1931년 생존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처음 기획했을 때 첫 번째 주인공이 마티스였고, 곧바로 열린 두 번째 개인전에 리베라가 초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국제적 위상을 알 수 있다. 당시 미국 최대 거부인 록펠러 가문도 리베라의 재능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3년 뉴욕 록펠러센터의 중심 건물인 30 록펠러 플라자가 완공되자, 록펠러 가문은 이 건물의 로비에 벽화를 그릴 당대 최고의 작가를 선정하기로 결정했다. 넬슨 록펠러는 아버지 존 D 록펠러 2세와 어머니의 의견을 고려하여 마티스, 피카소, 리베라 세 명을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 작가 모두 이 공모전 참여를 거절했다. 마티스는 정중한 거절 편지를 보냈고, 피카소는 답변조차 하지 않았으며, 리베라는 거절했지만 아이디어 스케치 한 장을 보냈다. 이 스케치가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 결국 벽화 프로젝트는 리베라에게 맡겨졌다. 제작비는 2만1000달러로 당시 가치로 환산하면 약 8억2000만 원에 해당했으며, 3~4개월의 제작 기간을 감안하면 상당한 보수였다.
그러나 리베라의 벽화는 완성되지 못했다. 1933년 3월부터 작업을 시작한 리베라는 얼마 후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4월 24일자 뉴욕 월드 텔레그램에 "리베라가 공산주의 운동 장면을 그리고, 록펠러 2세가 이를 지원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것이다. 벽화에 레닌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이 터져 나왔다. 넬슨 록펠러는 리베라에게 "새롭고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하는 희망과 고양된 비전을 가진 교차로에 선 인간"이라는 제작 지침을 주었으나, 리베라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리베라는 5월 9일부터 해당 건물에 접근이 금지되었고, 거의 완성을 눈앞에 뒀던 그의 벽화는 천으로 가려진 후 1934년 2월 9일 철거되었다. 사실 리베라는 일찍부터 공산주의 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있었고, 록펠러 가문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고의 작가를 모시겠다'는 욕심으로 벽화 프로젝트를 리베라에게 맡겼다가 정치적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리베라는 이 소동 과정에서 자신의 작업을 몰래 카메라에 담았고, 이를 바탕으로 고향 멕시코로 돌아와 벽화를 재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 멕시코시티의 예술궁전 벽면에 그려진 '인간, 우주의 통제자'이다. 새로운 제목으로 변경되면서 크기도 확대되었고, 레닌뿐만 아니라 트로츠키 등 여러 좌파 인물이 추가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록펠러 가문에 대한 반감도 명확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벽화 속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부분에 록펠러 2세의 초상이 추가되었는데, 그는 술집에서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는 록펠러 가문의 부와 방탕함을 풍자하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록펠러 가문은 리베라에게 약속한 돈을 모두 지불했다고 전해진다.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와 후원자의 통제 권한을 놓고 미국 사회에 엄청난 논쟁이 일었으며, 오늘날까지 록펠러센터 벽화 논란은 창작의 독립성과 후원의 영향력 사이의 긴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남아 있다.
흥미롭게도 이 사건은 장기적으로 모든 당사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리베라의 이름값은 이 소동 덕분에 더욱 높아졌고, 그 결과 록펠러 가문이 소장한 그의 작품은 훗날 거액의 경매가로 되돌아왔다. 1931년 MoMA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리베라가 그린 '경쟁자'라는 제목의 그림이 록펠러 가문 컬렉션에 들어갔는데, 이 작품은 2018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76만 달러(약 150억 원)에 낙찰되었다. 당시 중남미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벽화에 지불한 돈의 수십 배를 벌어들인 셈이다. 리베라의 벽화 철거 사건은 결국 미술과 자본이 얽혀 있는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예술가의 정치적 신념으로 촉발된 갈등이 역설적으로 예술 작품의 가치를 상승시켰고, 이를 통해 멕시코 벽화 운동은 더욱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결국 리베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도 멕시코를 세계 미술 강국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정치와 예술, 상업과 창작이 충돌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