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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거리 응원서 욱일기 재등장…한일 역사 인식 충돌 심화

2026년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욱일기가 등장하면서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 충돌이 심화되고 있다. 일본은 욱일기를 전통 문양이자 합법적 국가 깃발로 보는 반면, 한국은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으로 규탄하고 있으며, 양국 간 인식 격차는 쉽게 좁혀질 전망이 없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과 네덜란드의 경기 당일 일본 도시 거리 응원 현장에 욱일기가 다시 등장하면서 한일 양국 간 역사 인식 충돌이 심화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경기장 내부에서 욱일기 반입을 엄격히 통제하자, 일본 응원단이 규제의 사각지대인 거리 응원으로 장소를 옮겨 욱일기를 전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반복되어온 욱일기 논란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음을 의미한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경기장 내 욱일기 금지 규정을 피해 거리에서 욱일기 응원을 벌인 행위를 비판했다. 서 교수는 욱일기를 응원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과거의 역사적 상처를 무시하는 잘못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발언은 야후재팬을 포함한 일본 주요 포털 사이트를 통해 현지에 집중 보도되면서 일본 누리꾼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일본 누리꾼들은 한국이 욱일기만 유독 문제 삼는다며 반발했고, 국내 누리꾼들은 침략 전쟁의 상징을 국제 스포츠 행사에 끌어들이는 것이 명백히 잘못된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주요 국가들에게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의 군국주의와 침략 전쟁을 상징하는 전범기다. 그러나 일본 사회 일부는 이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일본 NHK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중앙의 태양에서 햇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방사형 문양 자체는 1603년부터 1867년까지 이어진 에도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어부들이 물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내거는 풍어기나 출산, 명절 등 경사스러운 날을 축하하는 민간의 길상 문양으로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내 여러 박물관에는 욱일 문양이 그려진 전통 그림과 풍어기가 걸린 어선을 묘사한 미술 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 문양이 군국주의의 색채를 띠게 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이다. 일본 제국 정부는 1870년 태양 주위로 16개의 햇살이 뻗어나가는 16조 욱일기를 일본 육군의 공식 군기로 채택했다. 이어 1889년에는 일본 해군이 햇살은 16개로 동일하지만 태양의 위치가 깃대 쪽으로 약간 치우친 형태를 해군 군함기로 공식 지정했다. 이후 각 군의 공식기로 지정된 욱일기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선봉에 섰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욱일기를 단순한 문양이 아닌 피와 탄압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1945년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군 해체와 동시에 욱일기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냉전 체제가 격화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이 일본의 방위력 증강을 위해 재무장을 허용하면서 1954년 일본 자위대가 창설되었고, 이 과정에서 욱일기는 합법적인 국가 기관의 깃발로 부활했다. 일본 해상자위대는 과거 제국 해군이 사용하던 16조 욱일기를 자위함기로 다시 채택했고, 육상자위대 역시 햇살의 수를 8개로 줄인 8조 욱일기를 자위대기로 공식 채택했다. 욱일기의 부활은 단순한 깃발의 재도입을 넘어 전후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불완전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로 평가된다.

오늘날 일본 사회가 욱일기를 옹호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배경에는 크게 다섯 가지의 논리가 존재한다. 첫째는 욱일기가 군국주의의 전유물이 아닌 예로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축하 문양이라는 인식이고, 둘째는 현재 자위대가 사용하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공식 깃발이라는 주장이다. 셋째는 전범기라는 비판에 맞서 욱일기를 나치의 하켄크로이츠와 동일선상에 놓이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는 태도다. 넷째는 일본 내 극우 세력과 혐한 단체가 반한 시위 등에서 욱일기를 국수주의를 과시하는 배타적 도구로 악용하는 현실이며, 마지막으로 일본 젊은 세대의 역사 인식 부재와 무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다층적인 논리들이 얽혀 있어 한일 양국 간의 인식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서경덕 교수는 일본 누리꾼들의 반응이 욱일기에 얽힌 침략의 역사를 올바르게 배우지 못했다는 증거라며 어떠한 이유로도 욱일기 사용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욱일기의 전통적 뿌리와 현재의 법적 정당성만을 내세우며 과거 제국주의가 남긴 폭력성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평가다. 피해국들이 욱일기 아래서 자행된 역사적 상처를 생생히 기억하는 한, 역사를 방어하려는 일본과 이를 규탄하는 한국 간의 인식 격차는 앞으로도 쉽게 좁혀지지 않을 전망이다. 국제 스포츠 행사가 정치적 논쟁의 장이 되지 않으려면 양국이 역사에 대한 진정한 대화와 이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