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노동자 40만명 제도권 편입 추진…정부 '양성화' 정책 검토
정부가 40만명에 달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양성화 정책을 검토 중이다. 고용허가제 개편과 함께 일정 자격을 갖춘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합법적 체류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으며, 노동계는 기본적 체류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국내에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약 40만명을 합법적인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는 '양성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국무조정실 등 관련 부처는 지난해 12월 외국인력 통합지원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해 노동계·경영계·학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미등록 이주노동자 양성화와 관련된 정책 전반을 논의해왔다. 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이미 한국 사회의 필수 노동력으로 자리 잡은 현실을 인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다.
노동부의 구체적인 양성화 방안은 고용허가제(E9) 개편과 함께 추진될 예정이다. 한국어 능력이 우수하고 숙련도가 높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양성화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노동부는 고용허가제 비자를 3단계로 세분화해 숙련 노동자의 장기 체류를 지원하는 방안을 초안으로 마련했다. 구체적으로는 고용허가제 개편 과정에서 일정 자격 요건을 충족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비자를 발급해 합법적인 체류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부처 간 의견 차이로 인해 정책 추진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40만명에 달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구조적 문제들이 작용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도 합법적으로 사업장을 변경하기 어려워 폭력이나 임금체불 등의 피해를 입고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영세 사업장들이 심각한 인력난을 겪으면서 낮은 임금에 해고가 용이한 미등록 이주민을 고용하는 관행이 만연해 있다. 고용허가 비자의 기간이 짧아 추가 소득을 목표로 미등록 체류를 선택하거나, 불법 브로커를 통해 입국하는 사례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기본적인 체류권 보장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정영섭 집행위원은 국내 노동력 수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이주노동 경로가 상대적으로 협소해 미등록 체류 문제가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미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체류권과 제도적 보장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남이주민센터 이철승 대표는 정부의 단속과 추방 중심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단속으로 추방하는 인원이 연간 3만명 수준이지만, 비슷한 규모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매해 새로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범죄 경력이 없는 등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 제도권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적으로도 미등록 체류자 합법화 사례가 있다. 스페인은 올해 1월 일정 요건을 충족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합법적 체류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31일 이전 입국자 중 5개월 이상 거주 사실을 입증하고 범죄 경력이 없는 경우가 대상이며, 함께 거주하는 자녀도 포함된다. 승인받은 이주민은 최초 1년간 스페인 전역에서 자유롭게 거주하고 취업할 수 있으며 이후 갱신도 가능하다. 스페인 정부는 이번 조치로 50만명 이상이 합법 지위를 얻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양성화 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확정될지, 그리고 부처 간 이견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향후 주목할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