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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젠슨 황 올해만 6번 만났다…AI 인프라 생태계 설계 나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올해 6번 만나 장기 파트너십을 공식화했다. 양사는 메모리 협력을 넘어 AI 팩토리 구축과 R&D 로드맵 공유로 협력을 확대하며, SK그룹이 AI 산업의 생태계 설계자로 자리 잡으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올해 공식 석상에서 여섯 차례 만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황 CEO의 최근 방한 나흘간 세 번이나 얼굴을 맞댔으며, 해외 공식 일정까지 포함하면 올해 만남이 총 여섯 번에 달한다. 양사의 잦은 접촉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협력에서 출발한 관계가 인공지능(AI) 팩토리·클라우드 등 AI 인프라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 회장이 그룹 차원의 AI 사업 확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8일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양사는 장기 파트너십을 공식화했다. SK와 엔비디아는 AI 팩토리 구축에 필요한 차세대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반도체 설계 및 제조 과정에 AI를 적용하는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황 CEO는 "SK는 우리의 최대 메모리 파트너"라며 "SK와의 파트너십 없이는 오늘날 AI 산업이 이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야심찬 아키텍처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기술을 함께 발전시켜 시장에서 최고의 성능과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로드맵을 공동 설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협력의 범위가 과거와는 차원이 다름을 명확히 했다. 그는 "그동안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협력은 메모리 중심이었지만 이제부터는 협력의 차원을 높여 SK그룹과 엔비디아가 더 큰 그림으로 함께 나아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협력의 두 축은 미래의 AI 팩토리 구축과 R&D 로드맵 공유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단순히 메모리를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 엔비디아의 차세대 제품 설계 초기 단계부터 함께 참여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표현이다. 황 CEO도 "이미 매년 SK하이닉스로부터 수십억 달러어치를 구매하고 있고 앞으로 상당히 늘어날 것"이라며 협력의 확대를 시사했다.

양사의 협력 대상은 엔비디아의 차세대 플랫폼 전반으로 확산된다. SK하이닉스는 AI 슈퍼컴퓨터용 고성능 메모리인 '베라 루빈'과 '그레이스 블랙웰' 협력을 이어가는 한편 'CPU 베라', AI PC 플랫폼 'RTX 스파크', 로보틱스 컴퓨팅 플랫폼 '젯슨 토르' 등에도 메모리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 DSX 플랫폼을 기반으로 2027년 한국에서 AI 팩토리를 처음 가동하고 아시아 대표 AI 클라우드 사업자로 도약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메모리 공급자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SK텔레콤은 엔비디아 GPU와 플랫폼을 활용해 AI 인프라 사업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그룹 차원의 시너지를 만들려는 전략이다.

최 회장과 황 CEO의 만남이 잦아진 것은 올해 초부터다. 지난 2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황 CEO와 '치맥 회동'을 시작으로 3월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에서도 만났다. 이달 1일에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GTC 타이베이 2026에 참석해 황 CEO의 기조연설을 직접 청취했다. 황 CEO가 한국을 방문한 후에도 만남은 계속됐다. 최 회장은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삼겹살집에서 황 CEO와 '삼소(삼겹살·소주) 회동'을 했고, 7일에는 황 CEO가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시구를 마친 뒤 강남구 깐부치킨 삼성점에서 다시 만났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일련의 행보를 AI 인프라 시장 선점을 위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분석하고 있다. AI 산업이 아직 표준 인프라와 수익 모델을 만들어가는 초기 단계인 만큼, 특정 제품을 많이 파는 것보다 초기 생태계 설계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깔려있다는 평가다. 재계 관계자는 "AI 미래 사업이 어떻게 전개될지 뾰족하게 나온 게 없는 상황에서 최 회장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비단 SK하이닉스만을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AI가 시장이 형성된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단계인 만큼 산업 자체를 설계하는 '룰 세터'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SK그룹이 단순한 부품 공급자를 넘어 AI 산업의 표준을 만드는 주도적 역할을 지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