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개표소 시위, 자율 수칙 붕괴…'부정선거' 구호로 확산
서울 잠실 개표소 앞 시위가 나흘째 접어들면서 참여자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재선거만 외치기', '태극기만 흔들기' 등의 자율 수칙이 붕괴되고 '부정선거' 구호로 확산되고 있다. 참여자 구성도 20대 중심에서 60대 중심으로 변화했으며, 인원도 8000명에서 1600명으로 감소했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의 잠실 개표소 앞에서 진행되던 시위가 나흘째 접어들면서 참여자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행동 수칙이 붕괴되고 있다.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유지되던 '재선거만 외치기', '태극기만 흔들기' 등의 자율 규범이 8일 오전부터 사라졌고, 대신 '부정선거' 구호가 시위 현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시위 초기 참여자들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초점을 맞추고 정치적 왜곡을 피하려던 노력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주최 측이 없는 자발적 집회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시위의 성격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주말 동안 시위 현장에 붙어 있던 6가지 수칙이 대거 철거되거나 훼손된 상태다. 가장 먼저 적혀 있던 '재선거, 참정권 침해, 애국가만 외치기'라는 첫 번째 수칙은 찢어져 있거나 떼어져 있었다. 이 수칙 아래에는 '하나의 목소리로 뭉쳐야 합니다. 다른 의견, 구호는 잠시 멈춰주세요'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지만 이제 그 흔적만 남아 있다. 두 번째 수칙인 '태극기만 흔들기'도 마찬가지로 제거되었다. 대신 8일 현장에는 '부정선거 외쳐도 됨',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 조심'이라고 적힌 새로운 팻말들이 붙어 있었다. 평화 지키기, 각자의 위치에서 함께 하기 등 3번부터 6번 수칙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시위 참여자들은 7일 오후부터 분위기가 변했다고 증언했다. 토요일부터 현장에 있었던 박 모씨(33·여성)는 '토요일에는 재선거만 외쳤는데, 일요일에 구호와 관련해 싸움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최 측이 없다 보니 사람들이 다 같이 의견을 맞춰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7일 오후에는 부정선거 구호를 외치자는 참여자와 반대하는 참여자 간 갈등이 벌어졌고, 결국 부정선거 구호를 외칠 수 있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우성아파트 경로당 앞 시위부터 참여했다는 강 모씨 자매(24·21)는 '그간 재선거만 외쳤던 건 시민집회가 다른 의미로 왜곡될 수 있어서였다'면서 '부정선거를 얘기하는 게 더 낫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함께 외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현장에서 불필요한 갈등도 발생했다. 8일 오전 10시경 핸드볼 여성 유소년 국가대표팀 선수 6명이 훈련 용품을 가지고 경기장에서 나오자 시위 참여자들이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감독은 '2주 뒤 국제 경기를 앞두고 연맹에서 지정된 공으로만 훈련해야 한다'며 '핸드볼은 손으로 하는 경기인 만큼 공의 촉감과 형태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참여자들은 감독의 설명에 납득하지 않았고, 선수들이 짐을 들고 나올 때 가방을 검사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여러 명이 선수들에게 몰렸다. 한 참여자는 선수의 가방 지퍼를 열어 내부 물품을 확인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참여자 구성도 크게 변화했다.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에 따르면 8일 오후 1시57분 기준 올림픽공원 내 연령대별 비중은 20대 15%, 30대 18.1%로 총 33.1%였다. 반면 40대 21.4%, 50대 16.5%, 60대 24.3%를 기록했다. 주말에는 20대가 30% 안팎으로 최다 연령층을 차지했으나, 이날은 60대가 가장 높은 비중을 보인 것이다. 인원 규모도 크게 줄었다. 이날 오전 11시35분 기준 잠실 개표소 앞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 1600여명이 모여 있었다. 지난 밤 자정 기준 8000여명이 밀집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감소폭이다. 이는 시위의 초기 모멘텀이 약해지면서도 동시에 참여 집단의 성격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