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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고가 붕괴사고, 설계서는 '보강시설 필수'였는데 현장엔 없었다

서울시의 공사시방서에는 서소문고가 철거 시 보강시설 설치를 명시했으나 실제 현장에는 이러한 안전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설계상 필요 없다는 시 관계자 주장과 현장의 2.9센티미터 침하 현상 사이의 괴리가 책임 소재 규명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사고의 원인 규명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가 드러났다. 서울시가 작성한 공사시방서에는 철거 구조물의 붕괴를 막기 위해 지지대와 버팀대 등 보강시설을 설치하도록 명확히 명시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나, 실제 사고 현장에는 이러한 안전 조치가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책임 소재 규명이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설계 단계에서의 의도와 현장 시공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

서울시가 27일 공개한 '서소문고가 개축 실시설계 용역 공사시방서'에 따르면, 시공 관련 안전대책 항목에 '철거 구조물의 변형, 침하 또는 붕괴를 막고 인접 시설물이 손상되지 않도록 필요 시에는 철거 구조물에 버팀대 또는 지주 등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공사시방서는 단순한 지침서가 아니라 발주처와 시공사 간의 계약 문서로서 법적 효력을 지니는 공식 문서다. 따라서 이 문서에 기재된 내용은 원칙적으로 시공사가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의무사항이 된다. 다만 '필요 시'라는 단서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이것이 의무사항인지 선택사항인지를 놓고 향후 책임 소재 판단에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장에 보강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구조 계산상 필요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시 관계자는 "설계 당시 구조 검토를 충분히 수행했고, 그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계획서대로 작업을 진행했다"며 "보강시설을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데도 설치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실제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의 심각성과 배치된다. 사고 당일 새벽 2시경 철거 현장에서 슬래브 절단 작업 중 2.9센티미터의 침하 현상이 실제로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설계 당시의 구조 계산과 현실 사이에 차이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오후 2시 33분경 고가차도 상판의 일부와 구조물이 낙하하면서 사망 3명, 부상 3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침하 현상 발견 후 안전진단까지 약 12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상황 보고 후 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를 불러 안전점검을 실시하기로 결정했고, 전문가를 모시는 데 시간이 걸려 오후 2시 이후에 점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 과정에서 즉각적인 조치의 부재가 피해를 확대했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경찰과 검찰이 전담팀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은 광역수사대장을 팀장으로 하는 50여 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편성했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관계기관과 함께 정밀감식을 진행했다. 서울서부지검도 소재환 형사5부장을 팀장으로 전담검사 4명과 수사관 6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꾸렸다. 검찰은 "경찰과 노동청 등 유관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철저히 규명하고, 신속한 피해자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향후 수사의 초점은 설계 단계에서의 구조 검토가 적절하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공사시방서에 명시된 보강시설 설치 조항을 왜 적용하지 않았는지에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설계상 필요 없다고 판단한 구조 계산의 타당성과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한 침하 현상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또한 침하 감지 후 신속하지 못한 대응이 피해 확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도 중요한 조사 항목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