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뉴스나우
사회

반도체 호황 속 청년 연구원의 죽음…성과 압박의 대가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원이 입사 1년 만에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유족이 정식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생전의 검색기록과 의무기록에서 드러난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와 성과 압박, 그리고 형식적인 회사의 대응이 비극을 초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호황 속 청년 연구원의 죽음…성과 압박의 대가
AI를 활용해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삼성전자가 코스피 7000시대를 열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한 청년 연구원의 극단적 선택이 기업 문화의 그림자를 드러냈다. 2024년 4월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지난해 3월 26일 극단적 결정을 한 30세 김치엽 연구원의 유족이 정식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김치엽씨는 반도체 설비혁신 연구개발을 담당하며 고대역폭메모리(HBM)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의 아버지 김영구씨는 5월 6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들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삼성전자라는 일터에서 벌어진 구조적 참사"라며 "100만 전자가 되면 과연 전 국민이 행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음을 던졌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57조2328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며, 반도체 부문에서만 약 54조원을 벌어들였다. 주가는 5월 14일 기준 29만원까지 치솟았다. 이 같은 성과의 뒤편에는 노동자들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생전의 인터넷 검색기록을 통해 드러난 김치엽씨의 심리 상태는 심각했다. 2024년 12월 "과로 온몸 저림", "회사만 오면 팔다리 저리고 가슴이 아픔", "직장 내 괴롭힘"을 검색했고, 2025년 1월에는 "마음이 지옥", "회사에서 개털렸을 때" 등을 검색했다. 다이어리에는 "사과문 제출", "빨리 빨리 빨리 빨리"라는 문구가 반복되었다. 이는 극도의 업무 압박과 성과에 대한 강박관념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2025년 2월 병원에서 정서적 불안정으로 진단받은 이후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의무기록지에는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큰 영향을 받은 1순위로 일과 직업 관련된 항목을 선택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 명이 빠지면 업무 공백이 많음", "파트장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 "다른 사람들만큼 해야 한다"는 기록도 남아 있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마음건강 휴가(병가)를 신청하려 했을 때 3개월의 안정가료 소견이 필요하다는 회사의 답변이었다. 형식적인 절차 속에서 실질적인 치료 시기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3월 삼성전자 연계 병원에서의 진단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프로젝트 발표 직후 극단적 선택이 이루어졌다.

삼성전자는 유족 질의에 대해 "입사 전부터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고, 고충을 청취한 뒤 업무 조정을 통해 부담을 줄였다"며 "사내 마음건강클리닉에서 전문의 진료를 받을 것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족 측은 회사가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김영구씨는 "(아프면) 일단 쉬게 하면 되는 것이고, 본인이 고집하면 가족들에게 요청할 수도 있지 않냐"며 "아이가 버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는데, 윗사람들에게 보여주기식의 행정을 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2024년 3월 금속노조·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반올림 등의 연구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동자의 수면장애 비율은 65%, 우울증세 유병률은 45.8%로 일반 인구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최근 1년 동안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했다고 답한 비율은 9.3%, 아파도 쉬지 못하고 출근하는 '프리젠티즘' 비율은 52.8%였다.

김치엽씨가 입사한 2024년 당시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에 HBM 분야에서 밀리면서 위기감이 극심했던 시기였다. 노조 측은 당시 "회사가 고통을 분배하자며 성과급을 '0'이라고 했고 근로자들은 반발 없이 받아들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임원진이 3880억원의 성과급을 나눠 가졌다"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신입사원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은 더욱 심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구씨는 "한번은 (치엽씨가) '박사를 밟고 들어올 걸 그랬다'고 말해 신입사원인데 잘 모르면 어떠냐고 했더니 '그렇지 않아요. 요즘 실적 쪼아요'라고 말했다"며 "당시 SK하이닉스가 치고 나가니까 삼성이 비상인 상황이었는데 아들한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고 회상했다.

김영구씨는 "삼성전자가 정말 자랑스러운 회사가 되려면 기업문화에서부터 모범이 돼야 한다"며 "삼성전자에 근무하고 있는, 또 앞으로 근무하게 될 이들이 우리 아들과 같은 일을 겪으면 안 되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그는 "가장 힘이 없는 말단 직원에게 가장 부하가 많이 걸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하며, 성과 창출에만 집중하던 회사의 분위기가 노동자가 아프더라도 쉴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산업의 호황 속에서도 노동자의 정신건강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기업 문화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