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 191억 과징금 불복소송 패소…삼성전자 갑질 피해 인정
미국 반도체기업 브로드컴이 삼성전자에 불리한 장기 공급계약을 강요했다는 이유로 받은 191억원의 과징금 불복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브로드컴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 남용을 인정하며 공정위의 처분을 지지했다.
미국 반도체기업 브로드컴이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받은 과징금 처분을 불복하며 제기한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브로드컴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삼성전자에 불리한 계약을 강요했다는 공정위의 판단을 인정하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 간의 거래 관행에 대한 국내 법원의 엄격한 판단이 드러난 사례로 평가된다.
공정위는 2023년 9월 브로드컴에 시정명령과 함께 약 19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용 무선통신, 와이파이, 블루투스 관련 반도체의 핵심 공급업체로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지위를 악용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적발 내용이었다. 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대기업이라도 거래 상대방에 대한 부당한 압박이 있었다면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브로드컴의 부당행위는 2020년부터 시작됐다. 삼성전자가 부품 공급 다원화 전략에 따라 경쟁사 부품을 일부 채택하자, 브로드컴은 구매 주문 승인 거부, 제품 선적 지연, 생산 중단 가능성 등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갤럭시S20 등 주력 스마트폰의 생산 차질을 막기 위해 브로드컴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2021년부터 3년간 매년 7억6000만달러 이상의 부품을 구매하고, 약정 물량을 채우지 못하면 차액을 배상하는 불리한 계약을 강제당했다.
공정위는 스마트폰 부품 산업의 특수성도 문제로 지적했다. 부품 공급업체를 교체하려면 최소 6개월 이상의 재설계와 인증 절차가 필요해 삼성전자가 협상에서 사실상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는 판단이었다. 브로드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삼성전자는 약 1억6000만달러의 추가 비용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공정위는 이러한 산업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 브로드컴의 행위가 더욱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브로드컴은 소송에서 삼성전자가 약속한 물량을 반복적으로 이행하지 않아 공급 조건을 계약서 형태로 명확히 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의 판단은 계약 형식이 아무리 명확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강압이 있었다면 부당행위로 본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는 거래 당사자 간의 실질적 힘의 불균형을 중요하게 본 판결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 건과 관련해 미국 법원에도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3억2630만달러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2024년 7월 미국 법원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으나, 같은 해 11월 양측이 합의로 종결했다. 이번 국내 법원의 판결은 국제적으로도 브로드컴의 부당행위가 명백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해석된다. 글로벌 공급망 시대에 대기업 간 거래에서도 공정한 거래 관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