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분으로 망한 피사 공화국, 한국에 던지는 경고
중세 해상제국으로 번영했던 피사 공화국은 제노바와의 전쟁 와중에도 지도층의 극심한 정쟁으로 인해 1406년 피렌체에 복속되었다. 국익보다 파벌 싸움을 우선시한 결과 멸망한 피사의 역사는 현재의 한국에 정치적 분열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피사는 세계적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시 전체를 돌아보면 실제로 볼만한 곳은 매우 제한적이다. 피사의 사탑이 서 있는 '기적들의 광장'이 거의 유일한 볼거리인데, 이곳은 12세기 후반에 지어진 하얀 대리석의 대성당, 세례당, 그리고 기울어진 종탑이 푸른 잔디 위에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 광장이 '기적들의 광장'으로 불리게 된 것은 20세기 초 이탈리아 문인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1910년 소설에서 이곳을 '기적들의 풀밭'이라고 부르면서부터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경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며 내려다본 하얀 대리석의 신비로운 빛을 "그리스도의 하늘 속에서 기적들의 풀밭을 빙빙 돈다"고 표현한 것이 유명하다.
'기적들의 광장'이 기적인 이유는 단순히 기울어진 사탑 때문만은 아니다. 광장의 건물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축미가 피사의 나머지 지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 광장은 피사 공화국의 전성기가 남겨준 유산이다. 피사는 토스카나의 다른 도시들처럼 한때 독립 도시국가였으며, 11세기부터 해상 진출을 시작했다. 12세기에는 코르시카, 사르데냐, 시칠리아에 거점을 확보하면서 지중해의 강력한 해상제국으로 도약했다. 당시 피사의 무역망은 중동, 그리스, 흑해까지 광범위하게 뻗어 있었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기적들의 광장'의 웅장한 건물들은 바로 이러한 해상 무역의 번영 속에서 12세기 후반에 건설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피사 공화국은 13세기 후반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같은 해안에 위치한 또 다른 도시국가 제노바가 피사의 영역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 표면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내부 요인이었다. 제노바와의 전쟁을 벌이면서도 피사의 지도층은 자신들 사이의 권력 싸움에 더 몰두했다. 심지어 제노바가 잡아간 피사의 포로들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을 때도 피사의 지도자들은 포로 중에 정치적 반대파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복귀를 지연시켰다. 이는 국가의 이익보다 파벌 간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했다는 의미였다. 동시에 내륙의 피렌체 공화국도 피사의 강력한 적으로 등장했다. 피렌체는 바다로 진출하는 길목에 있던 피사를 항상 탐냈고, 결국 1406년에 피사는 피렌체에 복속되었다.
피사의 멸망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피렌체의 군사력이 결정적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피사 지도층 내부의 극심한 분란과 배반이 공화국의 붕괴를 초래했다. 당시 피사의 최고 권력자였던 공화국 수반은 1399년에 거액의 금전을 받고 통치권을 통째로 팔아버렸다. 이러한 배신 이후 공화국의 붕괴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었다. 결국 해상 무역으로 번영했던 강국 피사는 지도층의 정쟁과 이기심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날 '기적들의 광장'은 과거의 영광을 증거하는 유적으로만 남겨져 있다.
공화국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력 정치가들과 당파 간의 경쟁은 항상 존재했다. 이러한 경쟁 자체는 민주주의 체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국가의 이익을 외면하고 극단적인 정쟁에만 몰두한다면, 피사 공화국의 사례가 명확히 보여주듯 국가의 멸망은 피할 수 없다. 한강의 기적으로 급속히 무역 대국으로 부상했으면서도 동시에 살벌한 정쟁으로 병들어 가고 있는 대한민국은 피사 공화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영광을 지키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당파의 이익보다 국가의 미래를 우선시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