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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이 시의 근본 동력

인문학자 박이문은 시와 과학이라는 인간의 두 가지 주요 활동이 모두 결핍을 채우려는 근본적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존의 시 이론들을 비판하고, 시적 언어의 역설적 특성과 과학적 언어의 차이를 철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본질을 조명한다.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이 시의 근본 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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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시를 쓸까. 이 오래된 질문에 현대 한국 철학을 대표하는 인문학자 박이문은 독특한 답변을 제시한다. 시를 쓰는 행위와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는 과학의 활동이 모두 같은 근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 내면의 결핍을 채우려는 근본적인 욕망이다. 박이문의 철학적 비평은 시와 과학이라는 인간의 두 가지 주요 활동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현대 철학의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사유는 단순한 철학 이론의 제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파고드는 깊이 있는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박이문의 철학적 접근은 기존의 시 이론들을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인 표현주의 이론은 시를 시인의 심정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적 언어는 객관적 사실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감정 상태를 토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이론의 극단에는 논리학자 에이어의 '의미 정서론'이 있는데, 이는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없는 모든 언어를 단순한 정서 표현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박이문은 이 같은 주장을 거부한다. 시적 언어가 비록 참거짓을 판별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어떤 의미를 전달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시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언어 활동이라는 것이다.

한편 인식론적 시론은 시를 과학과는 다른 차원의 인식 형태로 본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를 극단화하여 오히려 시야말로 진리를 드러내는 언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이문은 이 견해도 비판한다. 그는 객관성을 가지며 보편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관점만이 진정한 인식이라고 강조하며, 이 기준에서 시적 언어는 인식을 담아낼 수 없다고 본다. 이렇게 표현주의 이론과 인식론적 이론 모두를 비판한 박이문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단순한 감정 표현도 아니고 과학과는 다른 방식의 인식도 아닌 시적 언어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의 철학적 통찰의 핵심을 이룬다.

박이문에 따르면 과학적 인식과 시적 서술은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 과학적 인식은 의식의 측면에서 이성의 활동이며 분석적 기능이고, 대상의 측면에서는 보편적 관점과 추상적 의미를 추구한다. 반면 시적 서술은 의식의 측면에서 감성의 반응이며 융화적 태도이고, 대상의 관점에서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존재를 다룬다. 박이문은 이를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가 무엇인가를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한, 결국 시가 근본적으로 성취하려는 것은 구체적 대상을 추상하지 않은 채 추상화하려는 것이다.' 즉 시는 언어라는 추상화의 도구를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대상의 구체성과 개별성을 최대한 보존하려는 역설적 특성을 가진다. 이는 과학적 언어가 추상화를 통해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이다.

인간이 시를 쓰는 근본적인 욕망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박이문은 니체, 프로이트, 사르트르의 욕망론을 종합한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는 인간의 핵심을 잘 설명하지만, 박이문은 더 나아가 왜 인간이 힘을 추구하는지를 묻는다. 프로이트의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논의는 인간이 현실의 제약 속에서 승화된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박이문은 이것이 다소 일면적이라고 본다. 그가 궁극적인 설명을 찾는 곳은 사르트르의 현상학적 존재론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자의식을 갖지 않은 모든 존재자들인 '즉자'는 결핍을 내포하지 않고 그냥 존재한다. 반면 자의식을 가진 인간인 '대자'는 속이 비어 있어 결핍을 내포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고 애쓴다. 이것이 바로 박이문이 발견한 인간 욕망의 근본이다.

결핍을 채우려는 이 근본적 욕망이 시와 과학이라는 두 가지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이 박이문 철학의 핵심 통찰이다. 인간은 자연적 존재인 동시에 문화적 존재이며, 의미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이 의미의 세계는 다시 감성의 차원과 지성의 차원으로 나뉜다. 자연에 더 가까운 감성의 차원에서 인간은 시를 쓰고, 자연에서 멀어진 차원인 지성의 차원에서 과학을 한다. 두 활동 모두 인간이 자신의 결핍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려는 시도이다. 시적 언어를 통해 인간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며, 과학적 언어를 통해 인간은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진리를 추구한다. 박이문의 이러한 철학적 분석은 인간 존재의 이중성과 그 이중성 속에서 펼쳐지는 문화적 활동의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현대 한국 철학이 제시하는 이 같은 통찰은 우리가 우리의 철학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철학적 자산이 어떤 것인지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