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투표 불성립, 여야 갈등 심화...민생법안 110건은 통과
여야 6당이 발의한 개헌안이 국민의힘의 집단 불참으로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다. 개헌안 처리 기한인 10일까지 국민투표 동시 추진이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국회는 근로기준법·직업안정법·공무원법 등 민생법안 110여 건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의 집단 불참으로 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투표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다. 7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여야 6당이 발의한 개헌안은 의결에 필요한 재적 의원 3분의 2인 191명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개헌안 처리에는 국민의힘에서 최소 12명 이상의 찬성이 필수적이지만, 국민의힘이 의원총회를 열어 반대 당론을 재확인하고 본회의장 입장을 거부함으로써 투표 자체가 무산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번 개헌 추진을 "일방적 졸속 개헌"으로 규정하며, 헌법 전문부터 권력구조 개편까지 포괄하는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은 22대 국회 후반기에 여야가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헌법 전반을 논의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당은 성명을 통해 개헌은 선거 정국이 아닌 시기에 국민 참여와 여야 합의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개혁신당의 이준석 대표와 천하람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투표에 참여했으며, 국민의힘 내에서도 한지아 의원이 당론에 대한 의견 수렴 절차가 부족했다고 지적하며 본회의 표결에 불참했다. 이는 여야 간 개헌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개헌안 처리 기한은 6월 3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해 10일까지로 설정돼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은 8일 재차 본회의를 열어 표결을 추진할 예정이지만, 국민의힘이 반대 당론을 유지하는 한 개헌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민주당 등 6당의 의석만으로는 의결정족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와 동시 추진이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에 다시 한 번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22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출마자인 조정식·김태년·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모두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며, 현행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변경하는 방안 등이 차후 추진 과제에 포함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개헌안 투표는 불발됐지만, 7일 본회의에서는 국민 생활과 직결된 민생·경제 법안 110여 건이 처리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법안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다.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 근로자가 명시적으로 요청하면 휴게시간을 부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으며, 4시간 근로 후 30분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곧바로 퇴근이 가능해진다. 또한 근로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 안에서 연차 유급휴가를 시간 단위나 일수 단위로 나눠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기존에는 시간 단위 연차 사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반차 또는 반반차까지만 가능했지만, 이제부터는 시간 단위로 연차 유급휴가를 분할해 청구할 수 있고 사업주는 이를 부여해야 한다.
취업 사기와 허위 구인 광고를 막기 위한 직업안정법 개정안도 통과했다. 직업정보제공사업자에게 구인자 신원과 기업 정보, 직업 정보의 허위·과장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검증하도록 의무화했으며, 고용노동부 장관은 거짓 구인 광고에 대해 수정, 게시 중지 또는 삭제를 명령할 수 있게 된다. 공무원의 육아·돌봄 관련 법안도 처리됐는데,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은 육아휴직 신청 대상 자녀 기준을 현행 8세(초등학교 2학년) 이하에서 12세(초등학교 6학년) 이하로 확대했다. 난임휴직도 청원휴직의 한 유형으로 신설됐으며,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은 전부 개정돼 법률명을 인구전략기본법으로 바꾸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인구전략위원회로 확대 개편했다.
의료·안전 분야 법안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야간·휴일 소아 진료기관인 달빛어린이병원의 지정권자에 시장·군수·구청장을 추가해 지역 단위에서 소아 야간 진료 체계를 더 유연하게 구축할 수 있도록 했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 상태임을 알면서도 자동차 등을 제공하거나 운전을 권유·독려해 음주운전을 조장한 사람에 대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강화했다. 부동산 거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은 인터넷 부동산 표시·광고에 소재지, 면적, 가격 등 필수 정보를 명시하도록 했으며, 직거래 플랫폼 운영사업자에게는 거래 당사자의 본인 여부와 소유자와의 관계를 확인하고 이용자에게 직거래 유의 사항을 안내하도록 의무화했다. 소상공인과 사회적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법안도 포함돼 소상공인과 소기업이 기술인력 퇴직 등으로 등록 기준에 일시적으로 미달한 경우 일정 기간 제재 처분을 유예할 수 있도록 했으며, 사회적기업의 사업보고서 제출 주기는 연 2회에서 연 1회로 완화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