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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메모리 반도체 120조원 투자…AI 슈퍼사이클 선점 경쟁

삼성전자가 인공지능 수요 급증에 대응해 평택 사업장에 120조원을 투자해 P5 팹1·2를 동시에 증설하기로 결정했다.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심화하면서 글로벌 업체들도 일제히 생산 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삼성, 메모리 반도체 120조원 투자…AI 슈퍼사이클 선점 경쟁
AI를 활용해 생성된 이미지입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 경기 평택 사업장은 침묵 속에 있었다. 2023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극심한 부진으로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이 역사상 처음으로 15조원의 적자를 기록하자, 진행 중이던 P5 팹1 공사는 착공 8개월여 만에 전면 중단되었다. 축구장 16개 규모의 거대한 부지는 골조만 남겨진 채 '반도체의 겨울'을 상징하는 공터로 변해버렸다. 당시 업계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구조적 침체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했고,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 계획은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인공지능(AI) 붐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을 기록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고, 이는 AI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얼마나 급증시켰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공급 부족과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수요의 급증이라는 이중 기회 속에서 삼성전자는 전방위적 설비 투자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이는 단순한 시장 회복을 넘어 AI 인프라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가장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평택 사업장의 마지막 생산 라인인 P5 팹2 건설 일정을 대폭 앞당긴 것이다. 원래 내년 초로 계획되었던 공사를 7월로 6개월가량 앞당기기로 결정했으며, 이는 지난해 말 재개된 P5 팹1과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P5 팹1과 P5 팹2에 투입되는 총투자비는 120조원으로 추산되며, 이는 삼성전자가 AI 시장의 기회를 얼마나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규모다. 시장조사업체 드램익스체인지의 데이터에 따르면 구형 PC용 DDR4 D램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4월 1.65달러에서 올해 4월 16달러로 불과 1년 만에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이러한 극심한 공급 부족은 삼성전자에게 투자 가속화의 정당성을 제공했다.

2029년 가동될 예정인 P5 팹2는 단순한 메모리 생산 시설이 아닌 멀티팹으로 설계될 계획이다. 주력 상품인 HBM을 포함해 차세대 D램, 낸드플래시, 첨단 공정 파운드리 라인까지 모두 갖춘 복합 생산 거점이 될 것이다. P5 팹1과 P5 팹2의 생산 능력을 합치면 월 60만 장(12인치 웨이퍼 기준) 수준이 되어, 삼성전자의 현재 D램 전체 생산량(월 65만 개)과 맞먹는 압도적 규모를 자랑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하면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 경쟁력에서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운드리 시장의 지각 변동도 삼성전자의 공격적 투자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간 대만 TSMC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던 엔비디아, 테슬라, 퀄컴 등 빅테크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와 리스크 분산을 위해 삼성 파운드리와의 협력을 대폭 강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공격적 움직임에 경쟁사들도 즉각 대응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충북 청주 신규 공장 M15X에 연내 월 7만 개 규모의 D램 생산 장비를 채워 넣기로 했으며, 용인 클러스터 1기 팹 클린룸 개시 시점을 내년 5월에서 2월로 3개월 앞당겼다. 이곳은 차세대 7세대 HBM(HBM4E) 기반이 될 6세대(1c) D램의 핵심 양산 기지가 될 예정이다. 미국 마이크론도 미국 뉴욕과 아이오와에 HBM을 포함한 첨단 메모리 팹을 건설 중이며, 일본 히로시마 공장 증설까지 포함하면 2~3년 내 생산 능력이 급격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증설 경쟁이 단순히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치킨게임이었다면, 지금은 누가 더 빨리 인프라를 완공해 AI 칩 공급 능력을 증명하느냐의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AI 시대의 도래가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