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으로 우크라이나 평화협상 '무한 표류'…트럼프, 러시아 압박 완화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 전쟁에 집중하면서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에서 손을 떼고 있다. 러시아산 원유 제재까지 완화하면서 협상 교착 상태가 심화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무기 부족 사태도 임박한 상황이다.

미국의 중재로 진행되던 우크라이나-러시아 평화협상이 사실상 교착 상태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동 전쟁에 집중하면서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정치적 관심을 거두었고,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압박마저 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우크라이나 측과 회담하는 유럽연합(EU) 외교관들의 증언을 통해 미국이 더 이상 우크라이나전 해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중동 전쟁이 이 같은 정책 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가 폭등으로 인한 러시아의 경제적 이득이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재정 위기에 처해있던 러시아 정부는 유가 급등으로 석유 수출 수익이 크게 늘었으며, 현재 하루에 1억5000만 달러(약 2250억원)의 추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더욱 문제는 미국이 유가 상승 대처라는 명분으로 지난 12일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중단·완화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 상황을 호전시켜 협상 테이블로 나올 인센티브를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구입을 억제하려던 미국의 노력도 동시에 중단되면서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시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무기 부족 사태가 임박한 상황도 협상 전망을 악화시키고 있다. 미국이 중동 지역을 우선 고객으로 삼으면서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방공미사일 등 탄약 공급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EU에 무기 공급 차질을 공식 통보했으며, EU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중재하던 우크라이나-러시아 협상이 '정말 위험 구역에 있다'고 표현했다.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도 회담이 중단됐으며 미국이 다른 사안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실제로 제네바에서 열린 지난 2월 17∼18일 협상이 마지막이며, 아부다비에서 5일 재개되기로 했던 협상은 중동 전쟁으로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유럽 지도자들은 현 상황을 '재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EU 외교관은 중동 전쟁으로 정치적 관심이 우크라이나에서 떠났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고,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중동과 우크라이나가 동일한 미국의 자원을 두고 경쟁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의 주의가 중동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미국의 러시아산 원유 제재 해제가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언급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등 유럽 지도자들은 트럼프에게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트럼프는 '러시아는 강하고 우크라이나는 약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러시아의 협상 태도도 점점 더 강경해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간 트럼프를 비판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지 강화를 막으려 했으나, 이제는 우크라이나와의 휴전 협상에서 타협할 의향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푸틴은 지난 9일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중동 전쟁 휴전 중재 방안을 제안하는 등 중동 문제에 개입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앤드루 바이스 연구담당 부총재는 현 행정부가 모스크바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피하면서 대신 크렘린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주력해 왔다고 평가했다.
EU 지도자들은 미국이 러시아에 추가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휴전 협상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협상 과정 자체가 미국의 우크라이나 관여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는 만큼, 현재의 협상 교착 상태는 우크라이나의 장기전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동 우선 정책과 러시아에 대한 유화적 태도가 지속되는 한 우크라이나 평화협상이 본궤도에 오를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