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돌파에 환율 1500원 넘자, 한국 경제 '동시 악재' 직면
미국-이란 분쟁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했다. 한국은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고 반도체 중심의 경제 구조로 인해 다른 주요국보다 환율 약세와 증시 낙폭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중동 분쟁이 심화되면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고,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돌파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13일 서울 외환시장 야간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1497.5원으로 마감했으며, 장중 고점은 1500.9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7월 야간거래 시행 후 최고치이자, 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유가의 상승세도 가파르다.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13일 배럴당 103.14달러로 마감해 2022년 7월 29일(103.97달러) 이후 가장 높은 가격대를 기록했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98.71달러로 100달러 선에 육박하고 있다.
유가 급등의 원인은 중동 정세 악화에 있다. 미국이 이란의 핵심 거점인 하르그섬 군사시설을 폭격하는 등 강도 높은 공세를 이어가면서 중동 원유 수급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수송량이 하루 60만 배럴 수준으로 급감해 사실상 물류가 멈춘 상태라고 분석했다. 전쟁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국제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으며, 이는 곧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L당 1840.85원(전국 평균)으로 5일 만에 약 70원 내려가 다소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가 단기 유가 급등을 억제하는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조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충남대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는 "최고가격제가 단기 유가 급등을 막는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며 "고유가 고환율이 지속되면 금융시장은 물론 실물경제 전반에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지정 석유 최고가격이 2주마다 재조정되는 상황에서 국제유가와 환율이 동시에 상승하고 있어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원화의 약세가 다른 주요국 통화 대비 유독 심하다는 점이다. 이달 들어 13일까지 주간거래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평균 1476.9원으로 집계되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월(1488.9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인덱스는 이달 들어 2.8% 올랐지만, 같은 기간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3.8% 하락했다. 비교하면 유럽연합(EU) 유로(―3.3%), 일본 엔(―2.4%), 영국 파운드(―1.9%), 스위스 프랑(―2.3%), 캐나다 달러(―0.4%) 등은 원화 대비 절하 폭이 훨씬 작았다. 이는 한국 경제가 대외 리스크에 다른 나라보다 훨씬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중동 분쟁에 특히 취약한 이유는 구조적 문제에 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80%를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동산 수입분의 9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들어온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기초체력이 약한 경제 구조도 문제다. 고려대 경제학과 김진일 교수는 "한국 경제는 기름을 많이 쓰는 제조업이 발달해 유가가 오르면 바로 큰 타격을 입는다"며 "지정학적 리스크와 물류비 상승 등이 수출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져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곱절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해외 투자 증가로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난 상황도 원화 약세를 심화시키고 있다.
증시 역시 한국 경제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이스라엘 공습 이후 코스피는 12.1% 하락해 미국 S&P500(―3.6%), 중국 상하이종합지수(―1.6%), 일본 닛케이평균주가(―8.5%) 등 주요국 증시 대비 낙폭이 훨씬 컸다. 이달 코스피에서만 5차례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매 호가 일시 효력 정지)가 발동될 만큼 변동성이 극심했다. 신영증권 연구원 이상연은 "원자재 가격 급등, 공급망 교란 등에 의한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가 변동성을 키운다"며 "올해 높았던 증시 수익률,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민감한 경기 구조 때문에 당분간 국내 주식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금융위원회는 시장 상황 악화에 대비해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최대 운용 규모를 현 20조 원 수준에서 최소 10조 원을 더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