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 최고가격제 딜레마…국제유가 반영 vs 정유사 손실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제유가를 반영하면 휘발유 가격이 2000원대를 넘을 수 있고, 반영하지 않으면 정유사 손실이 급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중동 사태로 국제 석유가격이 급등하면서 정부가 도입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가 예상 밖의 난제에 직면했다. 산업통상부는 상승하는 국제유가를 반영하느냐, 아니면 국내 가격 안정을 우선하느냐는 이중의 딜레마에 놓여있다. 유가 상승을 제대로 반영하면 휘발유 가격이 2000원대를 넘어설 수 있고, 반영하지 않으면 정유사들의 손실이 급증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고가격제라는 규제 정책이 시장 변동성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현재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최고가격제 도입 이후 어느 정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도입 사흘째인 15일 오후 기준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1840원으로 전날보다 4원 내려갔다. 경유는 1842원으로 5원 하락했으나 여전히 휘발유보다 비싼 역전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13일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도매가를 휘발유 리터당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고시했으며, 이 가격은 26일까지 유지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최소한 향후 2주간은 국내 주유소 가격이 현재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정부가 27일 고시할 2차 석유 최고가격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산업부는 1차 최고가격에 국제 제품가격 상승률을 곱해 2차 최고가격을 정하기로 했는데, 국제 석유제품 시세의 상승 폭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석유제품 시장에서 13일 기준 휘발유는 배럴당 79.6달러로, 미국과 이스라엘 간 충돌이 본격화하기 직전인 지난달 27일의 46.9달러 대비 71.3% 급등했다. 같은 기간 경유와 등유의 가격 상승률은 각각 107.1%와 113.8%에 달해 휘발유보다 훨씬 큰 폭으로 오른 상태다. 이러한 국제 유가 상승을 그대로 반영하면 국내 휘발유 가격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의 추가 조치가 없는 한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설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는 최고가격제 도입 이전의 가격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소비자들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정부가 국제 유가 상승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으면 정유사들의 손실이 급증한다. 정유사들은 저가로 공급해야 하면서도 국제 시장에서는 높은 가격으로 원유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2월 3주 차 석유제품 가격을 기준가로 삼아 1차 최고가격을 정했지만, 그 이후 석유제품의 가격 상승세를 어느 정도 반영할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다.
정부는 정유사들의 손실을 재정으로 보전하겠다는 방침을 내놨지만, 그 규모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13일 석유시장 점검회의에서 손실 보전에 대해 정유사의 최소 마진과 손실을 함께 고려하겠다고 밝혔으나, 보전 규모는 아주 제한적인 수준이 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손실 보전액이 국제 석유가격 변동에 달려 있어 현시점에서는 정확하게 추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가 정유사들의 손실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로, 결국 정유사들도 일정 수준의 손실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최고가격제는 중동 사태 이후 급등하는 유가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지만, 이제 정부의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는 구조적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국제 유가를 반영해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 부담이 증가하고, 반영하지 않으면 정유사 손실이 누적된다. 여기에 정부의 재정 부담까지 겹치면서 모든 주체가 손실을 입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향후 국제 유가가 어느 수준에서 안정될지, 그리고 정부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손실을 보전할지에 따라 최고가격제의 실효성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