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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기업들 '불가항력' 조항 검토 확산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내 기업들이 국제 계약의 불가항력 조항 검토에 나섰다. 전문 로펌과 법무부가 기업들의 법률 자문 요청에 적극 대응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계약서의 세부 조항을 꼼꼼히 검토하고 대체 운송로 확보 등 실질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기업들 '불가항력' 조항 검토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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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자 국내 수출입 기업들이 국제 계약의 법적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에너지 자원 수입업체뿐만 아니라 비료, 곡물 등 다양한 산업에 납기 지연과 공급망 교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로펌들에는 기업들의 법률 자문 요청이 급증하고 있으며, 법무부도 중소·중견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간 상담과 무료 서면 자문을 제공하는 등 국가 차원의 지원에 나섰다.

로펌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전쟁 발발 이후 주요 로펌의 국제 계약·거래 담당팀에 기업들의 자문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법무법인 율촌은 이달 18일 '테헤란에 봄은 오는가?: 미국-이란 전쟁에 따른 중동 정세 변화와 우리 기업의 대응 방안'을 주제로 긴급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아랍에미리트 파견 근무 경험이 있는 신동찬 변호사가 공급망 교란 관련 법률 문제를 다루었다. 법무부의 '해외진출기업 국제법무지원단'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제한으로 인한 중소·중견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실시간 상담과 서면 자문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법적 대응 방안을 시급히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피해가 우려되는 업종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석유, 석유제품, 액화천연가스 등 중동에서 생산되는 에너지 자원을 취급하는 기업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비료와 곡물 수입업체의 경우 최대 수출국인 우크라이나로부터의 수입량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오던 터라 분쟁 가능성이 특히 크다. 법무부 국제분쟁대응과장을 지낸 한창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수입업체라면 중동 지역 노출 물량을 꼼꼼히 검토해 대체 운송·조달을 위한 비상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전쟁이 장기화해 유럽 수출입 창구인 홍해 뱃길까지 막히면 유럽 쪽 공급망을 타고 연쇄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기업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국제 계약의 '불가항력' 조항이다. 불가항력은 계약 당사자의 통제를 벗어난 사건으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의미하며, 인정되면 이행 의무나 지연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다. 전쟁, 해상봉쇄, 천재지변, 정부 규제 등이 전형적인 사유로 꼽힌다. 우리 대법원은 2008년 판례에서 "해당 사건이 당사자 지배 영역 밖에서 발생했고, 통상의 수단을 다해도 예견·방지할 수 없었음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95% 이상의 국제 계약이 불가항력 조항을 두고 있지만 계약서마다 세부 내용이 달라 각 기업이 자신의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발동 요건과 기한, 증빙 방식 등 절차적 요건을 준수해야 불가항력 조항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불가항력 조항의 해석과 적용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 조항이 지나치게 짧거나 모호하게 쓰인 경우, 또는 조항 자체가 없는 경우라면 계약 체결 시 정한 준거법 강행 규정에 따라 해석하게 된다. 국제물품매매에 관한 유엔 협약(CISG) 가입국이라면 이 조약이 민법·상법 등 국내법에 앞서 적용되는데, 이 지점을 놓치기 쉽다. CISG는 불가항력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79조에 그에 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해외 공급사로부터 물품을 매수하는 입장이라면 불가항력을 인정하기 어려운 경우 이를 명확히 선언하고, 상대방에 대체 운송로 확보를 요구할 수 있다. 반대로 매도 기업이라면 항공 운송 검토, 선사와의 협의, 대체물 조달 시도 등 이행노력의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추후 소송·중재 분쟁에서 유효한 입증 수단이 된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현재 상황에서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케이엘파트너스의 김범수 대표변호사는 "전쟁은 불가항력 조항의 전형적 사유인 만큼 피하기 어렵다"면서도 "국내 매수 기업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계약 조건이 불만스러웠던 차에 이번 사태를 빌미로 계약을 해지하려는 것은 아닌지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법률 검토를 넘어 계약 상대방의 의도까지 파악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물류 위기는 법적 리스크로 직결되는 만큼, 국내 기업들은 자신의 계약서를 즉시 검토하고 법률 전문가와 상담하며, 대체 운송로 확보 등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