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뇌과학으로 해석하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피아니스트 한지호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뇌과학과 음악 해석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클래식 음악, 특히 바흐의 작품은 뇌의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최고의 도구이며, 골드베르크는 안정과 긴장의 균형으로 고도의 지적 만족감을 제공한다.
음악이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바흐의 작품은 뇌의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가장 강력하고 건전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와 피아니스트 한지호가 이달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 체임버 홀에서 개최하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공연을 앞두고 음악과 뇌과학의 접점을 논의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인류 역사에서 언어만큼이나 강력한 행복의 원천이었던 음악이 어떻게 뇌를 자극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정재승 교수는 음악 감상이 뇌의 '측좌핵'이라는 행복을 느끼는 부위를 활성화해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뇌를 훨씬 더 강하게 자극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대중음악과 달리 클래식은 구조가 복잡하고 촘촘해서 청자가 내용을 완벽히 파악하기 위해 뇌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 교수가 가장 선호하는 음악가는 바흐인데, 학창 시절부터 글렌 굴드의 바흐 전집을 가장 많이 들었으며 첫 논문 주제도 바흐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바흐의 음악은 수학적으로 완벽한 규칙을 따르면서도 예상치 못한 화성 진행과 예외적인 움직임이 섞여 있어 뇌에 적절한 긴장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준다"고 분석했다.
바흐가 한 백작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 작곡했다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실제로는 뇌를 매우 강하게 자극하는 곡이다.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변주를 거쳐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의 이 곡은 안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전달한다. 너무 단순해 지루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복잡해 예민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안정'과 '긴장'의 적당한 균형이 청자에게 묘한 정서적 만족감을 제공한다. 정 교수는 "뇌과학적으로 보면 음들의 귀환과 안정을 통해 고도의 지적 만족감을 주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뇌 촬영 시 MRI 기계에서 피험자의 뇌를 자극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곡 중 하나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바흐는 초판 표지에 '음악 애호가들의 영혼을 고양하기 위한'이라고 적었는데, 정 교수는 이 곡이 뇌의 특정 영역을 자극하며 그 영역이 종교적 체험 시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공연을 연주할 피아니스트 한지호는 바흐의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뮌헨 ARD 콩쿠르 우승자인 그는 독일 언론으로부터 "글렌 굴드와 빌헬름 켐프 사이의 독보적 위치"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2024년부터는 미국 인디애나 음대에서 피아노과 교수로 활동 중이다. 한지호는 골드베르크를 '인간 삶의 30가지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는 "바흐가 수학적으로 어렵고 여러 성부 때문에 어려운 느낌이 있지만, 인간의 30개 모습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사람의 서른 가지 이야기를 연결해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지호는 바흐의 음악에 숨겨진 '드라마틱한 파격'에 주목한다. 장조의 곡이 나올 차례인데 단조의 변주곡이 등장하거나, 분석이 안 될 정도로 예상치 못한 음들이 쏟아져 나오다가 다시 세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느낌을 주는 식이다. 그는 "바흐는 대위법을 떠올리면 분석이 쉬울 것 같지만, 사실 이론적으로 보면 늘 예외적인 움직임과 생각지 못한 화성 진행이 있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3년 전 홍콩에서 한지호의 연습 연주를 우연히 들은 정 교수가 '바흐'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시작됐다. 흥미로운 관점을 확인한 두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이번 기획이 탄생했으며, 연주 후에는 정 교수가 모더레이터로 참여해 한지호와 함께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논하는 대담이 이어질 예정이다. 정 교수는 "스마트폰으로 예술을 쉽게 소비하는 시대일수록, 직접 공연장을 찾아 현장의 아우라를 느끼며 예술가와 호흡하는 것은 의미 있다"며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감정의 요동을 경험하는 행위는 우리 뇌를 가장 건강하고 적극적으로 깨우는 소중한 미적 체험이 된다"고 강조했다. AI가 인간의 경험을 대체하려 들지만, 실재하는 음악가의 연주와 이를 같은 공간에서 함께 듣고 느끼는 '감상'은 앞으로 더욱 귀한 경험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