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세 '국민 배우' 최불암 별세…'수사반장' '전원일기'로 한국인의 마음 담아낸 거장
한국 연기계의 거장 최불암이 87세로 별세했다. '수사반장'과 '전원일기'로 '국민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65년간 한국 드라마의 역사를 함께했으며, 45년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회장으로 나눔을 실천해왔다.
한국 연기계의 거장이자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이 지난 29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최불암(본명 최영한)은 1939년생으로 1959년 연극 '햄릿'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 뒤 65년에 걸쳐 한국 드라마와 연극의 역사를 함께해온 거장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영면을 맞이한 그의 빈소는 1일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유족들의 의사에 따라 조용히 추도되고 있다.
최불암의 대표작이자 국민적 사랑을 받은 드라마는 문화방송의 '수사반장'이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18년간 방영된 이 작품에서 그는 박영한 반장 역을 맡아 정의로운 형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다. 최불암은 실제 형사 고 최중락과 함께 사건 현장을 누비며 현실감 있는 연기를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5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새벽 1시든 2시든 전화가 오면 현장에 나갔다"며 "사건을 알아야 진실하게 연기하고 피해자의 심정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열정과 성실함이 '수사반장'을 국민적 드라마로 만들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시청자들은 그의 연기를 기억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전원일기'는 최불암을 '국민 아버지'로 만들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22년간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 그는 집안의 자애로운 아버지이자 마을의 어른인 김 회장을 연기했다. 이 역할을 통해 최불암은 한국인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아버지상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었다. 드라마 속 한 회차에서 구걸하던 아이 금동이를 입양하는 이야기가 방영되자, 이 장면의 감동이 현실로 이어졌다. 최불암은 이후 45년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전국 후원회장을 지내며 나눔의 실천을 이어갔다. 이는 드라마 속 역할이 현실의 삶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최불암의 활동은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08년 에스비에스 드라마 '식객'에서는 엄격한 요리 장인 오성근 숙수 역을 맡아 새로운 연기 영역을 개척했다. 또한 문화방송의 교양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14년간 전국을 누비며 평범한 이웃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처럼 그는 드라마 배우를 넘어 한국 문화와 일상을 담아내는 문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1967년 서울중앙방송 탤런트로 방송계에 입문한 이후 반세기 이상 한국 방송과 연극의 중심에서 활동한 그의 경력은 한국 연기계의 발전사 자체였다.
최불암의 별세 소식에 각계에서 추모가 이어졌다. '전원일기'에서 부자 역으로 함께 출연했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고인이 즐겨 말하던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 등 뒤에 있는 창문을 열어봐라. 행복이란 놈이 거기 있을 거다"라는 말을 전했다. 배우 나문희는 "우리의 자랑이었는데 먼저 가서 마음 한구석이 섭섭하다"고 애도했으며, 1996년 총선에서 고인과 경쟁했던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지 못할 만큼 따뜻하게 대해주셨다"고 회고했다. 정부는 지난 30일 고인에게 문화훈장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2일 아침 7시 4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이 진행된 후, 여의도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올리고 초록우산 본부를 들러 작별 인사를 한다. 장지는 경기도 파주 동화경모공원이다.
시민들의 조문도 계속되고 있다. 경남 창녕에서 온 김유숙씨는 남편 병간호를 위해 병원을 찾다가 최불암의 빈소 소식을 듣고 이틀 연속 조문했다. 그는 "'수사반장'도 '전원일기'도 정말 재밌게 봤다. '한국인의 밥상'을 할 때만 해도 정정하셨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국 토런스에 사는 권오상씨도 한국 여행 중 충북 청주에서 일부러 서울을 찾아 "'전원일기'를 보며 이민 생활에 많은 위로를 얻었다"며 조문했다. 최불암이 남긴 영상과 연기는 국내를 넘어 해외의 한인들에게까지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었던 것이다. 그의 따뜻한 목소리와 진심 어린 연기는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국민 아버지'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