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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낡은 셔츠 기억한 배우 최불암, 41년간 그늘진 아이들 곁을 지키다

배우 최불암이 29일 별세했다. 안방극장의 '국민 아버지'로 불렸던 그는 41년간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아동·청소년 후원에 힘썼으며, 소년 수형자들을 위해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했다. 조호진 시인과의 인연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따뜻한 배려와 진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배우 최불암이 지난 29일 별세했다. 안방극장의 '국민 아버지'로 불렸던 그는 1981년부터 41년간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국내외 어린이들을 지원해왔다. 특히 소년 수형자와 위기청소년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예술의 힘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치유하려 했던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조호진 시인과의 인연을 통해 드러나는 최불암의 따뜻한 마음은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가 된다.

2016년 5월, 조호진 시인은 배우 최불암과 감자탕집에서 처음 만났다. 소년 수형자와 위기청소년을 돕는다는 공통점으로 지인의 소개를 받은 자리였다. 조 시인이 아동 후원 활동에 관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최불암은 정중히 거절했다. "하는 것도 별로 없는 데 무엇이나 하는 양 비치는 게 쑥스럽소"라며 자신의 활동을 드러내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헤어지며 조 시인은 자신이 펴낸 시집 '소년원의 봄'과 시화 액자 '누군가'를 최불암에게 선물했다. 그 첫 만남에서 최불암이 기억한 것은 조 시인이 입었던 10년 된 낡은 셔츠였다.

며칠 뒤 뜻밖의 연락이 왔다. 최불암은 시인이 입을 만한 옷을 챙겨놓았으니 서울 여의도 자택으로 오라고 했다. 그는 첫 만남에서 조 시인의 낡은 셔츠를 기억하고 있었고, 준비한 점퍼를 건넸다. 주머니에 넣어둔 흰 봉투에는 책값에 보태라며 챙겨준 돈이 들어 있었다. 봉투 겉면에는 최불암이 손수 쓴 글이 적혀 있었다. "쓰신 시 '누군가'를 책상 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나를 다지고, 사랑을 다지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맙소. 최불암(씀)." 인터뷰는 쑥스럽다며 사양했던 배우가 처음 만난 가난한 시인의 형편을 헤아리고, 받은 시 한 편도 소중히 간직했던 것이다. 이후 최불암은 조 시인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고, 그 자리에서 소년 수형자들을 위해 이루고 싶은 꿈을 털어놓았다.

최불암이 소년 수형자들에게 쏟았던 정성은 2015년 12월 김천소년교도소에서 열린 뮤지컬 '날개3' 공연에서 잘 드러났다. 살인·강도 등 중범죄를 저지른 소년 수형자 20여명이 10개월 동안 춤과 노래, 연기를 연습해 무대에 올렸다. 공연이 끝난 뒤 최불암은 출연자들의 부모를 무대로 불렀는데, 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그러니 물었죠. 부모가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미어지죠"라고 최불암은 조 시인에게 회고했다. 1981년 '전원일기' 촬영 중 아역 배우와 맺은 인연을 계기로 아동 결연 후원을 시작한 최불암은 2012년 법무부와 함께 제로캠프 운영위원회를 발족하고 위원장을 맡았다. 2013년부터 김천소년교도소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했으며, 2014년 사단법인 제로캠프가 설립된 뒤에는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위기청소년들이 연극을 배울 수 있도록 사비를 들여 홍대에 공연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국민 아버지'로 불렸던 최불암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친을 여의어 아버지의 정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2007년 펴낸 책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배우라는 오래된 대사에 관하여'에서 "나는 사실 아버지를 잘 몰라요"라고 털어놓았던 그는,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전원일기'의 김 회장을 연기하면서 비로소 배웠다"고 회고했다. 대신 사람의 형편을 헤아리는 법은 어머니 이명숙 여사에게서 배웠다. 서울 명동의 주점 '은성'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술값 대신 시계를 맡기고 간 청년을 훗날 남몰래 만나 시계를 돌려주었다. 돈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청년이 부끄러워할 것을 헤아린 배려였다. 수십 년 뒤 아들 역시 처음 만난 가난한 시인의 낡은 셔츠를 기억하고 점퍼와 책값을 건넸다. 이는 어머니의 정성이 아들을 통해 다시 한 번 실현된 것이었다.

2016년 조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최불암은 "위기청소년을 위한 대안 예술학교를 세우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고 밝혔다. 연극과 음악, 미술 등 종합예술을 가르쳐 아이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돕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예술의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술은 상처를 치유해 줍니다. 예술은 분쟁보다 평화를 사랑합니다. 예술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줍니다." 1959년 연극으로 데뷔한 최불암은 67년간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MBC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으로 18년,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 회장으로 22년을 시청자와 함께했고, KBS '한국인의 밥상'도 14년간 진행하며 전국의 이웃을 만났다. 조 시인은 최불암을 이렇게 기억했다. "참 정이 많은 어르신이셨어요. 무엇보다 겉과 속이 같은 어른이셨어요. 전 최불암 선생님이 한국인들에게 아버지를 선물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잃은 사람들,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에게요." 그늘진 아이들 곁을 41년간 지켜온 '국민 아버지' 최불암의 따뜻한 유산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