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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 시대, 의원 수 줄이는 선진국들…한국은 왜 못하나

일본은 1996년부터 30년 가까이 국회의원 수를 511석에서 465석으로 줄여왔고, 현재 추가 감축을 논의 중이다. 이탈리아와 독일도 인구 감소 시대에 의원 수를 대폭 줄였지만,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감축했던 의석을 되돌렸고 이후 감축 공약만 반복하며 기득권을 지켜오고 있다.

인구 감소 시대, 의원 수 줄이는 선진국들…한국은 왜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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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30년 가까이 국회의원 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1996년 511석에서 출발한 일본 중의원(하원)은 현재 465석으로 감소했고, 최근에는 비례대표 의석을 추가로 31석 줄이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상원인 참의원도 같은 기간 10석이 줄어 242석이 됐다. 이는 단순한 의석 조정이 아니라, 인구 감소 시대에 정치권이 국민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취한 구조적 개혁의 결과다. 일본이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과 과정, 그리고 한국이 같은 상황에서 보이는 대조적 태도를 살펴보는 것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본의 의원 감축 역사는 1989년 리크루트 뇌물 사건으로 촉발됐다. 자민당의 오랜 독주 체제가 무너지고 첫 비자민당 연립정부가 출범하면서 정치 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당시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는 '금권정치의 온상'으로 지목된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개편하면서 중의원 의석을 511석에서 500석으로 줄였다. 이후 1999년 자민·자유·공명당 연립정권은 불황 시대 기업의 구조조정에 맞춰 정부도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명분으로 중의원 50석 및 공무원 25% 감축을 추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비례대표 20석만 줄이고 지역구는 손대지 못해 '용두사미'라는 비판을 받았다. 세습 정치가 많은 지역구 의원들의 기득권 앞에서 정치권이 타협한 것이다.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 정치권은 더 큰 압박을 받게 된다. 최고재판소가 2009년, 2012년, 2014년 선거에서 선거구 간 인구 편차가 2배 이상이었던 점을 문제 삼아 '위헌 상태'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1표의 값어치 격차' 문제로 불리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평등선거를 훼손한다는 지적이었다. 언론의 지적이 이어지고 여론의 압력이 높아지자 정치권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2014년 5석, 2017년 10석을 추가로 줄여 현재의 465석에 도달한 것이다. 20년에 걸쳐 총 46석을 감축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국민은 의원 감축을 강력히 지지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약 70%가량이 의원 수 감축에 찬성하고 있을 정도다.

현재 일본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추가 감축안은 인구 감소라는 객관적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2030년까지 일본의 전체 인구가 6.7% 감소할 전망이므로, 그 비율만큼 의석수도 줄이자는 논리다. 이를 주도하는 것은 자민당의 연립 파트너인 일본유신회인데, 이 정당은 오사카 지역정당 시절 시장 월급을 40% 깎고 지방의원 수를 20% 줄여 인기를 얻은 정당이다. 자민당도 지역구 의석만 유지되면 상대적으로 의석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어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반면 비례의원 의존도가 높은 군소정당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의 강력한 지지가 정치권의 저항을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만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2020년 국민투표를 거쳐 상원을 315석에서 200석으로, 하원을 630석에서 400석으로 대폭 줄였다. 독일도 지난해 하원을 736석에서 630석으로 감축했다. 이들 국가 모두 인구 감소와 재정 압박이라는 공통된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국민의 정치 불신 속에서 의원 감축이 개혁의 신호탄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한국도 인구가 감소 추세에 있고, 정치권에 대한 국민 불신은 매우 크다.

그런데 한국의 의원 감축 역사는 일본과 전혀 다르다.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총선에서 26석을 줄였지만, 불과 4년 뒤인 2004년 299석으로 슬그머니 되돌렸고, 2012년 300석이 됐다. 이후 선거 때마다 의석 감축이 공약됐지만 누구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정치권이 국민의 눈총을 외면하면서 '밥그릇'을 지켜온 것이다. 일본이 국민 여론과 헌법재판소의 압력, 그리고 정치 개혁의 명분을 바탕으로 30년 가까이 의원 수를 줄여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도 인구 감소, 재정 부담, 국민 불신이라는 일본과 동일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기득권 수호 욕구가 이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이 언제까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며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