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살 김우옥 연출가, 전통 연극의 틀 깨다…'혁명의 춤'으로 실험극 도전
92살 연출가 김우옥이 미국 실험극 '혁명의 춤'을 통해 전통적인 연극의 틀을 깨는 도전을 펼치고 있다. 80분간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은 대사 12개, 의미 없음을 표방하며 관객에게 이야기 이해보다는 순간의 극적 경험을 요구한다.
80분간 무대를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다. 조명 장치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손전등의 희미한 불빛, 성냥불, 무대 위 샹들리에가 가끔 켜질 뿐이다. 39명의 배우들이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나가는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낯설다. 이것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시연된 연극 '혁명의 춤'의 무대다. 92살의 연출가 김우옥이 연극의 기존 관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대사의 극도의 축소다. 80분의 공연 시간 동안 나오는 대사는 단 12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뭐지' '기다려' '여기야' '누군가 오고 있어' '그들 거예요' 같은 단순하고 짧은 문장들이다. 대신 무대를 채우는 것은 파도, 왈츠, 총소리, 단파방송, 비행기 음, 사이렌, 개 짖는 소리, 녹음된 음악 등 다양한 음향 효과다. 하지만 이 소리들도 온전히 들리지 않는다. 소리와 침묵이 교묘하게 섞여 있어서 관객은 무엇을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다. 인물의 사연이나 사건의 인과관계도 친절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게 연극인가? 연극이라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빠져든다.
김우옥 연출가는 이러한 관객의 혼란에 대해 뜻밖의 답변을 내놓는다. "이 작품에는 의미가 없어요. 솔직히 저는 관객들이 어떻게 이해하길 기대 안 합니다"라고 말한 그는 오히려 "이왕 어려워지는 거 더 어려워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전통적인 연극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관객이 이야기를 따라가고 의미를 이해하는 데 집중하면, 배우의 움직임, 빛의 변화, 무대에서 순간적으로 생겨나는 드라마 같은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대사를 안 들어야 드라마가 보여요. 대사를 들으면 그걸 따라가느라 볼 것을 못 봐요"라는 그의 말은 연극 감상의 방식 자체를 바꿀 것을 요구한다.
'혁명의 춤'의 원작은 미국 실험극 작가 마이클 커비가 1976년 뉴욕에서 초연한 작품이다. 39개 역할과 혁명의 순간에 마주할 수 있는 파편적인 순간들을 담은 8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이 희곡은 서사를 따라 인물의 심리와 사건의 결말을 이해하는 전통적인 연극의 틀을 과감히 탈피한다. 대신 지령문처럼 짧은 무대 지시에 입각한 배우의 정교한 움직임, 집요하게 반복되는 짧은 대사, 화려하지 않은 빛과 소리가 빚어내는 순간들로 무대를 채운다. 김우옥은 이를 1960~80년대 미국 실험극과 포스트모던 댄스의 흐름 속에서 해석했다. 당시 춤이 어떤 규격과 규칙의 틀을 깨고 일상의 움직임을 모두 춤이라고 본 것처럼, 이 작품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몸동작도 우리에게 익숙한 춤이 아니라 전투, 교신, 접선, 폭파, 바리케이드 시가전 등을 연상케 하는 일상적 동작들이다.
김우옥이 이런 실험극에 몰두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형식의 추구가 아니다. 그것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익숙한 연극의 관습에 대한 일종의 문제 제기다. 그가 관객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 작품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극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우와, 이거 멋있는데'라고 느끼는 게 우리 삶에 에너지를 주는 드라마라고 저는 생각해요. 이 작품은 그런 드라마 투성이예요. 그중 아주 미세한 부분이라도 관객이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는 그의 말에서 연극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이 드러난다. 1981년 국내 초연 이후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초대 원장 퇴임 기념 공연, 2023년 재공연을 거쳐 올해 다시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여전히 자신이 믿는 연극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92살 연출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김우옥은 젊은 연극인과 창작자들을 향해서도 메시지를 전한다. "작가의 대본을 분석하고 재현하는 정통을 벗어나 좀 새로운 걸 했으면 한다"고 말한 그는 "우리는 왜 늘 같은 형식의 연극만 봐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이는 한국 연극계에 대한 도전이자 초대다. "제가 이런 작품을 하는 건 '이건 달라. 그러니 이것도 좀 보고 다른 연극을 해봐' 하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설명한 그는, 젊은 연출가들이 이 작품을 보고 자신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혁명의 춤'은 10월 28일부터 11월 8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