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 별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4일 별세했다. 여야 지도부가 모두 조문했으며,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민주화운동의 거목이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4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상도동계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았던 최 전 장관의 서거 소식에 여야 지도부가 모두 빈소를 찾아 조문했으며, 이재명 대통령도 근조화환을 보내 그의 정치적 업적을 기렸다.
최형우 전 장관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공고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 4·19혁명 당시 동국대의 학생 대표로 활동했으며, 1968년에는 '4·19 6·3범청년회'의 사무총장을 지냈다. 1971년 제8대 총선에서 울산·울주 지역구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해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9·10·13·14·15대 국회의원을 연이어 지낸 6선 정치인이다. 그의 의정 활동은 독재정권에 맞선 저항의 역사로 가득했다.
최 전 장관의 정치 경력은 고문과 탄압으로 얼룩져 있다.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 의도를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가 국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3개월간 고문을 받았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에도 다시 보안사에 연행돼 의원직을 빼앗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전 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에 함께했다. 1981년 김 전 대통령이 창설한 민주산악회에 입회해 조직을 꾸렸고, 1984년 정치 활동 규제가 풀리자 이듬해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으로 재야와 야권의 반독재 투쟁 최전선에 섰다. 신민당 부총재, 통일민주당 수석부총재 및 원내총무를 거치며 김동영 전 정무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리며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여당으로 옮겨 정무제1장관을 맡았고,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는 민자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지내며 문민정부 초기 개혁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에는 신한국당의 차기 주자인 '9룡' 중 한 명으로 꼽혔으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약 30년간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최 전 장관의 장례식은 여야 정치권의 추도로 진행된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오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방명록에 '민주화의 큰 어른이셨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김 대표는 조문 후 기자들에게 "최 전 장관은 민주화에 큰 헌신을 하고 부마 민주항쟁과 5·18 정신을 살리려고 애를 쓰신 분"이라며 "민주화의 뿌리를 기릴 수 있도록 여야를 넘어 다 함께 성찰해야겠다"고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았다. 장 대표는 "제가 교육부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내무부 장관이셨다"며 "다른 분들은 장관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는데 최 장관은 늘 저희들과 함께 일반 직원들이 타는 엘리베이터를 타며 소통하셨던 기억이 있다"고 추도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는다. 장례위원장으로는 권노갑 김대중재단이사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헌정회장이 참여한다. 김 대표는 여야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게 된 의미를 설명하며 "최 전 장관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향했던 뿌리에 부마항쟁과 5·18 정신을 잇는 것이 있었다"며 "그런 점에서 여야가 같은 뿌리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전 장관의 유족으로는 배우자 원영일씨와 2남2녀(석균·제완·은지·은실)가 있다. 발인은 27일 오전 8시이며,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장과 4·19혁명공로자회장 자격으로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