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뉴스나우
경제

AI 역량검사·실무과제까지…기업들 채용 검증 강화로 청년 구직 부담 급증

기업들이 AI 역량검사, 실무과제, 장기 인턴십 등 다층적인 채용 검증 절차를 강화하면서 청년 구직자들의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기업들은 AI 시대 인재 검증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검증 비용이 구직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AI) 발전 속에 일부 기업들이 채용 과정에서 청년들에게 과도한 검증 비용을 요구하면서 구직 난이도가 급상승하고 있다. 서류 단계부터 시작되는 복잡한 전형, AI 역량검사, 실무과제 제출 등 다층적인 검증 절차로 인해 취업준비생들의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AI 시대에 적합한 인재 선발이라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검증 비용이 구직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채용 공고에서 가장 먼저 취업준비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서류 전형의 복잡성이다. 한 보험사는 2026년 신입 공개 채용에서 63개 문항으로 구성된 문답식 전형을 새로 도입했는데, 주관식 문항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500~1000자까지 작성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이 과정에 주어진 시간은 단 5시간이다. 지원자들은 한 기업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데만 이틀 이상을 소비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4세 지원자 A씨는 "해당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느라 이틀이나 시간을 썼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채용공고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끝까지 지원했는데 서류에서 탈락하니 힘이 빠진다"며 심한 피로감을 드러냈다.

서류 단계를 통과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최근 기업들이 도입하는 AI 역량검사(역검)는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서류전형 합격자만 필기시험을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현재는 모든 지원자가 서류 제출과 함께 AI 역검을 봐야 한다. AI 역검은 AI 면접, 전략게임, 인성검사 등으로 구성되며 한 번에 보통 80분이 소요된다. 취업준비생 나씨(24)는 올 상반기에만 여덟 번의 AI 역검을 봤으며, "정말 가고 싶은 회사의 시험을 볼 때는 시간당 1만2000원인 인터뷰룸을 빌릴 정도로 신경을 써야 한다"고 부담을 토로했다. 더욱 문제는 서류에서 탈락해도 그 이유가 자기소개서 부족인지, 역검 미달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이제 지원자의 AI 활용 능력까지 평가 대상으로 삼고 있다. 기아와 HD현대는 올 하반기 신입 공채에 각각 'AI 문제 해결력'과 'AI 활용 역량검사'를 처음 도입했으며, 삼천리는 2027년 신입사원 공채 서류 문항에서 일상생활에서 AI 활용으로 성과를 낸 사례를 기술하도록 했다. 더 나아가 지원자의 실무능력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전략서, 기획안, PPT 등 실제 업무에 가까운 과제를 면접 전부터 요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29세 디자인업계 취업준비생 안씨는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 채용 과정에서 서류 합격 후 3~4일간 작업물을 제작하고 발표까지 준비했으나 최종 탈락했다. 안씨는 "지원자는 자신의 작업물이 외부에 공유될 위험까지 감수하며 제출하는데, 회사에서는 그 결과물을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 것 같다"며 불만을 표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턴십과 계약직 기간을 거쳐야만 정규직 채용이 확정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는 2026년 하반기 채용 연계형 인턴십 모집에서 인턴십 평가와 임원 면접을 통과해도 곧바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2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한 뒤 6개월간 계약직 사원으로 일한 후 다시 정규직 전환 심사를 거쳐야 정규직 채용이 확정된다. 결국 최종 채용까지 8개월이 소요되는 것이다. 25세 취업준비생 김씨는 "최종적으로 정규직 채용을 확정받기까지 8개월이 걸리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이러한 강화된 검증 절차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A보험사 관계자는 "AI를 활용한 자기소개서 작성과 첨삭이 일반화된 환경에서 기존 방식으로는 지원자의 경험과 강점,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검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B증권사 관계자도 "전문성이 필요한 직무인 만큼 인턴십 이후에도 적응 기간을 두기 위해 전형 절차를 구성했으며, 신입 채용과 청년 구직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검증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구직자에게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정부가 일률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지만 업종과 직종, 기업 특성에 따라 어떤 채용 방식이 활용되고 각각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를 정리해 모범 사례와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한 "기업 역시 지원자에게 요구하는 시간과 노동이 실제 직무 역량을 검증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AI 시대 채용의 효율성과 공정성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한 업계와 정부 차원의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