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소장품 전시 논란으로 국중박 관장 결국 사퇴…세계 3위 박물관 신뢰 추락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개인 소장품을 박물관 특별전에 출품하고도 소유 사실을 숨긴 논란으로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작품 검증 부실과 이해충돌 문제가 제기되면서 세계 3위 규모의 박물관의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개인 소장품을 박물관 특별전에 출품하면서 빚어진 검증 부실과 이해충돌 논란에 책임을 지고 21일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연간 관람객 650만 명을 돌파하며 세계 3위 규모의 박물관으로 도약한 국립중앙박물관이 관장의 부적절한 처신으로 인해 신뢰에 큰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유 관장은 입장문에서 "실추된 박물관의 명예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제가 관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밝혔으며, "박물관 직원들이 쌓아 올린 가치가 저의 개인적인 실수로 한순간에 무너졌다"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논란의 발단은 지난 7월 개막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서 비롯됐다. 박물관은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이라는 유묵을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했으나, 외부 제보로 인해 실제로는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작품으로 확인되었다. 박물관은 작품을 즉시 철거하고 전문가 7명의 검증을 거쳐 박중양의 글씨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단순한 전시품 검증 실패로 보였던 이 사건은 해당 유묵이 유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유 관장은 2019년 온라인 경매에서 이 작품을 5만 원에 구입한 뒤 지난 5월 직접 전시를 추천했다. 특별전의 최초 출품작 목록은 지난 2월에 확정되었으나 해당 유묵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5월 8일 유 관장이 작품을 추천한 뒤 같은 달 19일 출품동의서와 인수증이 작성되었고, 22일에는 관장 보고를 거쳐 전시 위치까지 확정되었다. 관장이 자신의 소장품을 추천한 지 불과 14일 만의 일이었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작품의 진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물관은 소장자인 유 관장의 설명만을 토대로 작자를 판단했으며, 박중양이 박원근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2009년 정부 보고서에 이미 기록되어 있었음에도 확인하지 않았다. 유 관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별도 감정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본인이 서예사 전공자라서 확신했다"고 답했으며, 작품 선정 당시 별도의 서예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하지 않았고 이해충돌 신고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증 실패 이후의 대응도 비판을 키웠다. 유 관장과 박물관은 작품 철거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사과했으나, 정작 작품이 유 관장의 개인 소장품이며 직접 전시를 추천했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소유 사실은 지난 15일 국회 제출 자료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유 관장은 국정감사에서 처음에는 개인 소장품임을 밝히는 것이 자랑처럼 보일까 봐 주저했고, 친일파 작품으로 확인된 뒤에는 미술사학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에 공개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같은 특별전에는 유 관장이 소장한 '자수 상보자기'도 출품되었으며, 배우자가 기증한 '석호상'과 '석호소상' 두 점은 관련 규정에 따른 홈페이지 공개가 이뤄지지 않아 지적을 받았다. 배우자 기증품의 수증 여부를 심의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이 유 관장이라는 점에서도 이해충돌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유 관장의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과거 문화재청장 재직 당시에도 개인 저술 활동과 공적 업무가 맞물리면서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2007년에는 문화재청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 유 관장의 저서 5종을 정부 예산 1300여만 원으로 구입해 홍보용으로 배포한 사실이 드러났다. 2006년에는 산불로 소실된 낙산사 동종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종 내부에 유 관장의 이름이 새겨진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고, 2007년에는 문화재 보호 규정을 위반하고 취사가 금지된 여주 효종대왕릉 재실 앞마당에서 조리한 음식으로 관계자들과 식사한 사실이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2008년에는 숭례문 화재로 국보가 소실되자 문화재청장으로서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당시 배우자와 유럽 출장 중이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유성 출장 논란에도 휩싸였다. 지난해 7월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한 유 관장은 15개월 만에 다시 사의를 표명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