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대상 없는데 진입 명령…반복된 소방관 순직 참극
경기 부천 공장 화재로 소방관이 순직한 사건에서 건물 내 구조 대상자가 없었음에도 현장 지휘부가 진입을 명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과거 수년간 반복된 같은 패턴의 비극이며, 전문가들은 지휘 체계의 근본적인 결함을 지적했다.

경기도 부천의 금속 부품 도장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소방관이 순직한 사건이 또 다시 같은 패턴의 비극을 드러냈다. 지난 16일 발생한 화재에 투입된 김진석 소방위(44)는 17일 결국 숨졌고, 함께 투입된 다른 소방관도 중상을 입었다. 문제는 현장 지휘부가 건물 내부에 구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원들에게 진입을 명령했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수년간 반복되어온 소방 안전 체계의 근본적인 결함을 다시금 노출시켰다.
화재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문제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부천시 오정구 내동의 공장 화재 초기 진압에 투입된 인력은 총 4명이었다. 진압 과정에서 불이 급격히 확산되자 2명은 긴급히 대피했지만 김 소방위를 포함한 2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뒤늦게 구조된 2명 중 김 소방위는 끝내 숨졌고 나머지 1명도 중상을 입고 치료 중이다. 경찰은 공장 대표를 업무상과실치상 및 업무상실화 혐의로 입건했다. 그러나 유족들이 제기하는 의문은 현장 지휘관의 의사결정에 집중되어 있다. 유족이 언론에 공개한 메모에는 "내부에 이미 모두 대피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휘자의 대응 부족으로 젊은 대원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장 지휘관도 건물 내부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의 진입을 지시한 것이다.
이러한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같은 패턴의 사고가 과거 수년간 반복되어 왔다. 2024년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냉동식품 제조 공장 화재에서는 현장에 출동한 구조대원 2명이 순직했다. 당시 공장 관계자가 "내부에 사람이 없다"고 명확히 말했음에도 지휘부는 구조 대상자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진입을 지시했다. 2022년 경기 평택 물류창고 화재와 2021년 울산 상가건물 화재에서도 사람이 없는 건물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이 같은 반복적인 비극은 소방 현장의 지휘 체계와 의사결정 프로세스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에서 지휘부의 판단 오류를 명확히 지적했다. 정용우 미래소방연합노동조합 위원장은 "안에 구조 대상자가 없었던 만큼 외부 방수로도 진압이 가능했을 것"이라며 "소방 내부에서도 무리하게 진입할 필요가 없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 회장도 "휘발유나 시너 등 위험물질이 있으면 섣불리 진입하지 말아야 하는데, 내부 위험물질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원이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길중 한국소방노조 위원장은 더욱 구체적으로 "이번 사고는 대원들이 약 20분간 내부에서 화재를 진압하다 급격한 연소 확대로 중상을 입은 것"이라며 "이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면 현장에서 위험성을 파악하고 안전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현장 대원들은 시야가 제한되고 지휘관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지휘관은 진입·철수 여부를 적시에 판단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재 원인 규명 과정에서도 공장의 근본적인 안전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 합동감식 결과 불이 시작된 공장 3층 작업장에서 시너를 사용한 금속 세척 작업 중이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경찰은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에 정전기 또는 미세전기, 마찰열로 인한 스파크가 튀면서 불이 붙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현장에서는 제4류 위험물인 시너와 페인트 등 인화성 물질이 담겨 있거나 담겼던 용기 180여개가 발견되었다. 발화 지점에서 1~2미터 떨어진 곳에는 시너가 든 깡통 수십개가 있었으며, 일부는 개봉된 상태였다. 당국은 인화성 물질이 급격한 연소 확대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공장의 안전 관리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는 점이다. 해당 업체는 인화성 물질을 대거 취급하면서도 건물 내부에 방폭 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위험물 취급 관련 허가를 받은 이력도 없어 위험물 관련 소방 점검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건축 면적 362제곱미터가 의무 설치 기준에 미치지 않아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공장은 2021년 1월에도 불이 난 적이 있지만, 건물 관리 업체가 자체적으로 소방 점검을 실시한 뒤 '이상 없음' 보고서를 관할 소방서에 제출했다. 소방당국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최근 5년간 한 차례도 공장에 대한 화재 안전 점검을 하지 않았다. 현장 감식에 참여한 김수영 국립소방연구원 연구관은 "인화성 물질을 사용해 금속 세척 작업을 하는 작업장에선 작업자들이 정전기 방지 작업복을 입어야 하고, 작업장 내 방폭 설비가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현장 감식 결과 그런 흔적을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현재 33명으로 구성된 수사 전담팀을 편성해 화재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