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대상 없는데 진입 지시···소방관 순직 사고의 구조적 문제점
경기 부천 공장 화재로 소방관이 순직한 사건에서 구조할 사람이 없었음에도 건물 내부 진입이 지시돼 비극이 발생했다. 건물은 5년간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으며 대량의 인화성 물질이 방치돼 있었다. 현장 지휘 체계와 산업안전 관리의 근본적인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경기 부천의 금속 부품 도장 공장 화재로 소방위 김진석이 순직한 사건은 단순한 재난 사고를 넘어 현장 지휘 체계와 산업안전 관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지난 16일 발생한 이 화재에서 건물 내부에 구조할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방대원 4명이 건물 내부로 투입됐고, 그 결과 김 소방위를 포함한 2명이 고립돼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유족들은 지휘관의 판단 오류가 젊은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강하게 항의하고 있으며, 이는 국내 소방 현장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화재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명확해진다. 소방대원들이 건물 내부로 진입할 당시 공장 직원들은 이미 모두 대피한 상태였다. 현장 지휘관도 이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원들에게 건물 내부 진입을 명령했다. 고인의 유족이 공개한 메모에는 "내부에 이미 공장 직원이 모두 대피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휘자의 대응 부족으로 젊은 대원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대원들은 약 20분간 건물 내부에서 화재진압을 시도했지만 갑자기 불이 급격하게 확대되면서 고립되고 말았다.
이 사건의 또 다른 핵심은 건물 내부에 산재한 대량의 인화성 물질이다. 현장감식 결과 시너와 페인트 등 제4류 위험물에 해당하는 인화성 물질이 담긴 용기 180여 개가 발견됐다. 발화 지점에서 1~2미터 떨어진 곳에는 시너가 담긴 깡통 수십 개가 있었으며 일부는 개봉된 상태였다. 경찰 수사팀은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에 정전기나 미세전기, 마찰열로 인한 스파크가 튀면서 불이 붙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국립소방연구원 연구관은 "인화성 물질을 사용해 금속 세척 작업을 하는 작업장에선 정전기 방지 작업복을 입어야 하고 방폭 설비가 갖춰져 있어야 하지만 현장에서 그런 흔적을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공장이 5년간 단 한 차례도 화재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공장은 2021년 1월에도 불이 난 적이 있었지만, 건물 관리 업체가 자체적으로 소방점검을 실시한 뒤 '이상 없음' 보고서를 소방서에 제출했다. 소방당국은 이 보고서를 근거로 최근 5년간 공식 화재 안전 점검을 단 한 번도 실시하지 않았다. 또한 해당 업체는 인화성 물질을 대거 취급하면서도 건물 내부에 방폭 시설을 갖추지 않았으며, 위험물 취급 관련 허가를 받은 이력도 없어 위험물 관련 소방 점검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건축 면적 362제곱미터가 의무 설치 기준에 미치지 않아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소방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한국소방노조 김길중 위원장은 "현장 대원들은 공기 호흡기 면체 착용으로 시야가 제한되고 지휘관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지휘관은 진입·철수 여부를 적시에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1월 경북 문경의 냉동식품 공장 화재에서도 구조 대상자가 없는데도 지휘부가 내부진입을 지시해 소방대원 2명이 순직했다. 2022년 경기 평택 물류창고 화재와 2021년 울산 상가건물 화재에서도 사람이 없는 곳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공장 대표를 업무상과실치상 및 업무상실화 혐의로 입건했으며, 33명으로 구성된 수사 전담팀을 편성해 화재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남긴 과제는 단순히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선다. 요구조자가 없을 경우 화재진압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산업 현장의 위험물 관리 체계와 정기적인 안전점검 제도의 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소방관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장 지휘 체계의 개선, 위험물 관리 기준의 강화, 그리고 정부 차원의 정기적인 안전점검 강제화 등 다층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