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전역 폭동사태, 수십 년 만의 최악 규모…시청 방화·백화점 약탈
프랑스가 생활비 인상과 연료가격 급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인한 폭동사태에 휩싸였다. 17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약 80만 명이 거리로 나섰으나 약탈, 방화, 폭력 사태로 확대되어 시청 전소, 백화점 약탈 등 수십 년 만의 최악 규모 피해가 발생했다.
프랑스 전역이 생활비 급등과 연료가격 인상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로 인한 폭동사태에 휩싸였다. 17일(현지시간) 파리, 보르도, 릴, 리옹, 마르세유 등 주요 도시에서 주최자 추정 80만 명(경찰 추정 50만 명)이 거리로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약탈, 방화, 폭력 사태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프랑스 주요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은 이날 전국 1750곳에서 집회가 개최됐다고 발표했다. 르몽드 지는 이번 사태를 '전례 없는 심각한 도심 폭력 사건'이라고 보도하며, 파리가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고 묘사했다.
시위는 초반에는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파리 북동부의 시위 거점인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시작된 행진에서 참가자들은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이에즈'를 악기로 연주하며 합창하고 행진했다. 그러나 시위대가 루브르 미술관 일대의 중심가로 진입하기 시작한 오후부터 일부 참가자들이 폭도로 변했다. 시위대는 2018년 정부의 연료세 인상 조치에 항의했던 '노란 조끼' 운동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노란 조끼를 입고 모였으나, 극단주의자들이 시위를 장악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약탈과 방화 행위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파리 중심부의 라파예트 백화점, 셀린느, 디올 등 주요 명품 브랜드 매장을 비롯해 휴대폰 가게, 슈퍼마켓 등이 극단주의자들의 표적이 됐다. 폭도들은 사다리와 울타리를 들고 공성전처럼 점포의 문을 부수고 무차별적으로 상품을 약탈했다. 방도롱 광장과 샹젤리제 거리 등 파리의 주요 지점들은 마스크와 모자를 쓴 시위대가 폭죽을 던지고 경찰이 최루가스와 방수차를 동원하며 충돌하는 전쟁터가 됐다. 광장에 주차된 자동차에 불을 지른 자들로 인해 곳곳에서 화염과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에마뉘엘 그레고와르 파리 시장은 '피해 규모는 막대하고 엄청난 수준'이라며 '파리 전역의 거리가 조직적으로 파괴됐다'고 밝혔다.
지방 도시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는 도심의 상점과 경찰서가 시위대에 의해 파괴됐으며, 시청이 일시적으로 시위대에 점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시청에 난입한 사람들은 무정부주의를 상징하는 문자 'A'를 벽에 그렸으며,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왕권 억압의 상징이었던 바스티유 감옥이 군중의 습격을 받은 것에 빗대어 '우리는 바스티유를 점거하러 간다'고 외쳤다. 남서부 소도시 리모주에서는 시청이 시위대의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여 종루 등 건물 전체가 전소됐다. 18세기에 건설된 이 건물은 프랑스의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다. 리옹에서는 관광안내센터가 극단주의자들의 방화로 전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프랑스 내무부는 툴루즈, 그르노블, 앙제 등 다른 도시에서도 약탈 미수, 경찰관 공격, 가로시설 방화, 정부기관과 언론기관을 겨냥한 공격 등이 보고됐으며, 현재까지 전국에서 4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시민들에게 평화적인 시위를 촉구했으나, 폭력 사태가 확산되자 '프랑스에는 폭력의 자리가 없다'고 표명하고 공공물 파괴와 약탈 행위를 엄벌에 처할 방침을 보였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뉴 총리는 경찰과 헌병대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극도로 심각한 폭력'에 맞섰다고 밝히며 공권력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이번 시위에는 '노란 조끼' 운동의 일부 전직 주요 인물들이 참여했다. 고등학생의 교육환경 개선 요구를 적극 지지하며 시위를 선동한다는 비판을 받는 극좌 진영의 장뤼크 멜랑숑 '불복종의 프랑스'(LFI) 대표도 현장에 나타났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에서 선두를 달리는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시위 중 폭력행위에 나선 사람들을 극좌 세력으로 규정하고 그들이 시위의 본래 취지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르펜 의원은 '정당한 사회적 요구가 또다시 극좌 세력과 멜랑숑 의원에 의해 인질로 잡혔다'며 '그들은 폭력을 정당화하고 무질서를 권리로 주장하면서 프랑스를 혼란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8년 전 전국으로 확산되어 마크롱 정권을 궁지에 몰았던 '노란 조끼' 운동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