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시아 에너지 제재 유예…'국익' 명분 vs '푸틴 눈치' 비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에너지 제재법인 그레이엠법의 시행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경유 가격 안정을 위해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결정한 데 이은 조치로, 미국 의회에서는 국가안보보다 경제적 실리를 우선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에너지 관련 제재를 일부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현 시점에서 면제 조치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며 지난달 18일 자신이 서명한 '그레이엄법'에 담긴 제재 등을 면제한다고 발표했다. 이 결정은 예정된 18일 발효를 앞두고 이루어졌으며, 러시아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정치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레이엄법은 지난 7월 사망한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주도로 입법된 법안으로, 러시아산 원유나 가스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5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상품에 최대 100%의 관세를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러시아 에너지를 구매하는 국가들에 직접적인 불이익을 주고, 동시에 러시아의 주요 수입원을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내 최측근이었으며, 이 법안은 러시아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대표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제재를 유예함으로써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을 통한 재정적 숨통을 다시 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러시아산 경유 수입을 결정한 조치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9일 "미국과 세계 시장에 즉시 30만 톤 이상의 경유를 공급하고, 11월 중 추가로 50만 톤, 그 직후 100만 톤을 공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다음 달 3일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유 가격 폭등으로 인한 국내 여론의 반발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러시아로부터의 경유 수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동시에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제재를 시행하기는 정책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에너지 가격 안정이라는 경제적 실리를 국가안보 차원의 제재 정책보다 우선시한 셈이다.
미국 의회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비판이 즉시 제기됐다. 리처드 블루먼솔 민주당 상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이번 조치를 "비굴하고 비겁한 행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블루먼솔 의원은 "이번 유예 조치는 미국의 국가안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는 것과 전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러시아 정책이 국익보다는 정치적 이익이나 개인적 관계를 우선한다는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NBC 등 주요 언론도 제재 유예가 러시아에 재정적 숨통을 틔워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미국의 에너지 정책과 러시아 제재 정책 사이의 근본적인 긴장을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국내 에너지 가격 안정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에 대한 강경한 제재를 유지하려는 두 가지 목표는 상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것은 단기적인 경제적 실리였으며, 이는 미국의 대러시아 정책의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고 있다.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적 시점, 그리고 에너지 가격이라는 실질적 민생 문제가 맞닿아 있는 만큼, 이 결정이 향후 미국의 러시아 정책 기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