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반도체주 4일간 1조달러 시총 증발…중국 경쟁 심화로 한국 기업 집중 타격
세계 AI·반도체주가 4거래일간 1조달러 시총을 증발했으며,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금리 인상 우려와 중국 메모리 업체의 기술 추격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

금리 인상 우려와 인공지능(AI) 투자 부담 논란, 중국 메모리 업체의 기술 추격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세계 AI·반도체 업종이 역사적 낙폭을 기록했다. 미국 CNBC 방송이 16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세계 시가총액 상위 20개 AI·반도체 종목의 시총은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4거래일 동안 1조달러(약 1340조원)를 넘게 증발했다. 이는 단순한 시장 조정을 넘어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 업종의 대장주인 엔비디아는 주가가 5.3% 하락하면서 약 2910억달러(약 391조원)의 시총을 잃었다. 뒤를 이어 SK하이닉스가 약 2438억달러, 삼성전자가 약 2373억달러의 시총 감소를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메모리 3사(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시총 감소액이 전체 낙폭의 약 40%를 차지했다는 것으로, 반도체 업계에서도 메모리 분야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음을 보여준다. 미국 증권 전문매체 벤징가의 집계에 따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키옥시아·샌디스크·웨스턴디지털 등 메모리·저장장치 6개사의 시총은 지난 2일 이후 1조900억달러(약 1463조원)가 증발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약세는 미국 증시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엔비디아(-1.8%), 인텔(-2.8%), AMD(-1.5%)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동반 하락했고, 델 테크놀로지스는 무려 6.8%나 급락했다. 대만의 반도체 설계·제조 대기업 TSMC도 호실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주가 하락을 막지 못했다. TSMC는 4분기 매출이 최대 543억달러(약 72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해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주가는 대만증시에서 2.0% 내렸고 뉴욕 증시 상장주식예탁증서(ADR)도 1.8% 하락했다. 이는 시장이 단기 실적 개선보다 장기 산업 전망을 더 우려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장을 흔들고 있는 핵심 요인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금리 인상 전망으로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다. 둘째, AI 수요를 기반으로 한 '슈퍼사이클'이 종료될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의심이다. 셋째, 그리고 가장 즉각적인 위협은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최근 메모리 집적도를 높인 새로운 구조 기술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29년 메모리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중국은 2028년에 엄청난 양의 램(RAM)을 생산할 것"이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이 중국발 충격에 집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D.A.데이비슨의 길 루리아 애널리스트는 CNBC에 "중국의 기술 추격으로 인한 영향이 있다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집중될 것이며 마이크론은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마이크론은 등락을 거듭하다 1.9% 상승 마감한 반면, 한국 메모리 기업들은 더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는 중국 메모리 업체의 기술 수준이 한국 기업들에 더 직접적인 경쟁 위협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향후 메모리 시장의 공급 과잉이 현실화될 경우 가격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 경우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다만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가격 폭락은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반도체 업계의 사이클이 과거보다 안정화되었고, AI 수요 자체는 장기적으로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기술 혁신과 원가 경쟁력 강화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